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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는 거짓말, 내 말이 진짜"…진술 신빙성에 운명 갈릴 김경수·안희정

중앙일보

입력

왼쪽부터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김경수 경남도지사 [연합뉴스]

왼쪽부터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김경수 경남도지사 [연합뉴스]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1·2심 선고 재판이 30일과 다음달 1일 각각 예정돼 있다. 두 사건 모두 '스모킹건'이 없기 때문에 김 지사와 안 전 지사의 선고 결과는 재판부가 검찰과 피고인 중 어느 편의 '진술 증명력'을 인정하느냐에 따라 향방이 갈릴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김경수 '킹크랩 시연회' 참석했나 

'드루킹' 김동원씨 등은 김 지사가 2016년 11월 9일 김씨가 운영하는 경기도 파주 느릅나무 출판사에서 열린 '킹크랩 시연회'에 참석했다고 주장한다. 특검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김씨 등은 "김 지사는 킹크랩의 기능에 감탄했고 사용을 허락해달라는 김씨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의 의사를 표시했다"고 밝혔다. 김씨와 공모한 측근 '서유기' 박모씨는 "당시 드루킹으로부터 '김 지사 앞에서 킹크랩 프로그램을 시연하고, 경공모 조직을 알려주기 위한 브리핑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또 "드루킹이 '킹크랩으로 인해 이득 볼 사람은 김경수'라고 얘기했다"고 진술했다.

 '드루킹' 김모 씨가 지난해 12월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출두하고 있다. [뉴스1]

'드루킹' 김모 씨가 지난해 12월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출두하고 있다. [뉴스1]

반면 김 지사 측은 출판사에는 간 적 있지만 '킹크랩을 본 적이 없다'고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다. 김씨의 진술 신빙성을 탄핵하며 '드루킹이 다른 사람들과 공모했다'고도 했다. 김 지사 측은 김씨가 구치소에서 쓴 노트를 증거로 제출하며 "(노트에는) 드루킹이 공범들과 수사에 어떻게 대응할지, 진술을 어떻게 할지 조율하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며 "이 내용대로 (공범들에게도) 지시가 전달됐기 때문에 (박씨 진술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드루킹 김씨와 측근들의 진술이 증명력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진술을 한 사람들 스스로는 진실이라고 믿는 것 같지만 사실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원했던 것에 기초한 진술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며 "진술의 증명력을 따질 때 이 같은 진술의 객관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김 지사의 진술에 모순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상당수 발견된다"며 "드루킹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출판사를 찾아갔다는 것과 정치적 자문을 구했다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은데, 재판부가 이런 점에 의문을 가진다면 김 지사에게 불리한 선고가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희정 '위력' 행사했나 

안 전 지사의 1일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도 진술의 증명력에 따라 결과가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안 전 지사는 2심에서도 비서였던 김지은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합의된 성관계'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안 전 지사의 1심 재판부도 피해자인 김씨의 진술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안 전 지사와 김 씨의 업무상 수직적·권력적 관계로 인해 자유의사를 제압하기 충분한 위력이 존재했다"고 했다. 하지만 "안 지사가 그 위력을 행사해 간음에 이르렀다는 직접적이고 유일한 증거라 할 수 있는 피해자 진술은 그대로 믿기 어려운 정황이 다수 엿보인다"고 판결했다.

반면 김씨 측은 1심이 위력에 의한 간음을 협소하게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항소심에서 김씨 측은 특히 피해자의 진술 증명력이 인정될 수 있도록 하는 변론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 항소심 결심에서 김씨 측은 최후진술을 통해 "아무리 힘센 권력자라도 자신이 가진 위력으로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며 "부디 사건의 내용을 꼼꼼하게 검토해주시어 실체적 진실에 입각한 판단을 해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항소심 첫 재판이 열린 지난해 11월 29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앞에서 '보통의 김지은들이 만드는 보통의 기자회견'을 열고 1심 판결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항소심 첫 재판이 열린 지난해 11월 29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앞에서 '보통의 김지은들이 만드는 보통의 기자회견'을 열고 1심 판결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판사 출신 변호사는 "1심 때도 성범죄에서 피해자를 우선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항소심을 앞둔 지금의 분위기가 1심때와 다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라며 "성범죄는 특히나 외부적 요건보다 피해자의 진술과 정황증거를 살펴야 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결국 김씨의 진술이 어느 정도의 증명력을 갖는지에 따라 안 전 지사의 선고 결과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범죄·공직자 사건, 진술로 판단하기 가장 어려운 재판" 

법원에서는 "성범죄와 공직자 사건이 진술증거로만 판단하기 가장 어려운 재판"이라는 말이 나온다. 고법의 한 판사는 "성범죄와 공직자 사건은 대다수가 진술 증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며 "직접 증거는 부족한데 진술 증거로 유죄 판결을 내리는 순간 양형과 관계 없이 피고인의 사회적 재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매우 어려운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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