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흉터가 있습니다. 그 흉터를 숨기기보다는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포토 에세이 『괜찮아 돌아갈 수 없어도』펴낸 이찬호씨 #"많은 걸 잃었지만 많은 걸 얻었다"
2017년 8월 군대 훈련 도중 K-9 자주포 폭발로 전신 화상을 입은 이찬호(25) 씨가 덤덤하게 자신의 꿈을 밝혔다.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엔 죽음을 극복한 사람 특유의 강인함이 배어 있었다.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크게 다친 당시 폭발사고에서 그는 생존자 중 가장 심한 전신 55%의 화상을 입었다. 당시 병장이었던 이 씨는 제대를 8개월 앞두고 있었다.
폭발 사고가 발생하고 1년 반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어느새 상처를 극복하고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첫 번째 발걸음으로 이 씨는 최근 포토 에세이 『괜찮아 돌아갈 수 없어도』(새잎)를 펴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책 출간을 위한 비용을 모금했고, 목표 금액의 226%(1133만3777원)가 모였다.
최근 서울 순화동에서 만난 이 씨는 "책 출간으로 그동안 도와주신 많은 분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다"며 "책의 수익금은 모두 화상 환자 등에게 기부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책은 사고 이후 이 씨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신체와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담았다. 이 씨는 생사를 넘나들다가 다섯번 대수술을 통해 극적으로 새 생명을 얻었다.
이 씨는 "치료를 받는 동안 나에게 새로운 일들이 너무 많이 펼쳐져서 잊으면 안 될 것 같아 기록하기 시작했다. 신체가 달라지고 나니 세상에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너무 많더라. 나중에 시간이 지나 이러한 기억이 모두 사라지면 후회할 거 같아 적어놓은 글들"이라고 소개했다.
힘든 시간을 기록하기보다 잊고 싶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물론 그럴 때도 잦았다. 하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나는 기록을 택한 거 같다. 기억함으로써 잊는 방법도 있다. 안 괜찮은 걸 인정하니 괜찮아졌다"고 했다. 이어 "사고가 일어난 뒤에도 K-9 자주포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고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사고로 이 씨가 잃은 것은 건강한 신체뿐이 아니다. 중학교 3학년 때 길거리 캐스팅을 당한 이후 10여년간 꿈꿔왔던 배우의 꿈 역시 폭발음과 함께 사라졌다. 이 씨는 "배우가 되기 위해 그간 운동도 많이 하고 준비를 많이 했다. 폭발이 일어난 직후 의식이 온전치 않은 상황에도 이루지 못한 배우라는 꿈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회상했다.
이 씨가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가족이었다. 24시간 곁을 지키며 간호해준 형과 부모님, 주변에서 많은 힘이 되어준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에게 고마운 빚을 졌다는 사실이 그를 버티게 한 힘이 됐다.
'살아있다'는 사실도 그를 일어서게 했다. 사고를 당하고는 계절 변화 등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도 다시 바라보게 됐다. 피부가 약해져서 날씨나 환경 변화에 민감해진 탓도 컸다. 이 씨는 "과거에는 몰랐는데 내가 숨이 붙어 있고, 많은 사람과 같은 시간에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소중해졌다"고 했다.
당시 절절한 기억들은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씨는 모진 시련에 좌절하지 않고 극복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책에 남긴 "흉터는 상처를 극복했다는 이야기" "피부는 재생할 수 없지만 난 재생 중이다" "많은 걸 잃었지만 많은 걸 얻었다"는 고백이 이에 해당한다.
한술 더 떠 이 씨는 "폭발 사고로 남들이 갖기 힘든 흉터를 갖게 되면서 나는 오히려 나만의 색깔을 찾은 거 같다.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싶다"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그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fire_charisma'다.
사고 이후 많은 것들을 견뎌냈지만, 사실 그는 아직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리고 있다. 터널이나 엘리베이터 등 밀폐된 공간에서 엄청난 불안감을 느낀다. 또한 폭발음이나 물체가 터지는 형상에도 극도의 공포감을 느낀다. 가장 심각한 것은 극심한 불면증이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를 쉽게 잠들지 못하게 한다.
인터뷰에 동행한 이 씨의 형 이윤호 씨는 "동생이 사고 이후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지체하지 않고 바로 행동에 옮긴다. 아마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걸 경험해봐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의 힘겨운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화상 상처는 회복이 더뎌 앞으로도 2~3년 동안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아야 한다. 당장 다음 달 25일 손가락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피부 이식 수술을 앞두고 있다. 이 씨는 "사실 고민이 많다. 앞으로 몇 년을 병원에서 보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30대가 된다. 몸이 어느 정도 괜찮아진다 해도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묻자 "사고 이후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봉사활동을 할 생각"이라며 "이제는 먼 미래를 내다보기보다는 가까운 시일 안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씨는 지난 26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사비로 마련한 연탄 1000장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줬다. 이날 연탄 나르기에는 이 씨뿐 아니라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두 다리를 잃은 하재헌 중사와 지뢰제거 작업 도중 지뢰 폭발로 시력을 잃은 김상민 씨 등도 함께했다. 이들은 이 씨가 사고를 당한 뒤 알게 된 소중한 인연들이다.
그의 다음 목표는 흉터를 당당하고 아름답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에게 흉터는 하나의 예술이 됐다.
"흉터가 흉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에겐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상처가 있습니다. 상처가 아문 흔적이 바로 흉터입니다. 앞으로 사진전 등을 통해 흉터를 예술로도 승화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