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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화웨이 사태…캐나다는 미·중 코끼리 싸움에 밟히는 잔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캄보디아 속담에 ‘코끼리들이 싸우면 짓밟히는 건 잔디(grass)’라는 말이 있어요. 지금 캐나다가 그 잔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나허 신임 주한 캐나다 대사 #미국 요청 받고 멍완저우 체포 #중국은 캐나다인 사형선고 보복

 마이클 대나허(57) 주한 캐나다 대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캐나다의 처지를 이렇게 묘사했다.

 캐나다는 지난해 12월 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을 체포하며 미·중 간 패권 다툼에 휩쓸렸다. 멍 부회장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지만, 미국은 캐나다 법원에 범죄인 신병 인도를 요구하고 중국 정부는 자국 송환을 요청하고 있다. 그새 중국에선 3명의 캐나다인이 체포·구금됐다. 마약 밀매 혐의를 받고 있는 캐나다인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지는 등 불똥이 캐나다로 튀고 있다.

마이클 대나허 신임 주한 캐나다대사가 21일 서울 중구 정동 주한 캐나다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마이클 대나허 신임 주한 캐나다대사가 21일 서울 중구 정동 주한 캐나다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지난해 12월 부임한 대나허 대사는 대표적인 지한파 외교관이다. 1993년, 2009년에 이어 세번째 한국 근무를 하게 됐다. 그는 “역사적으로 강대국들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어 왔다는 점에서 캐나다와 한국은 닮아 있다”고 말했다. 대나허 대사를 서울 정동 캐나다 공관에서 21일 만났다.

 화웨이 사태 때문에 중국에서 캐나다 국민을 상대로 ‘사법 보복’을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멍 부회장은 캐나다 법원에서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이며, 사법부의 독립적인 판단을 존중한다. 미국이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는 문제와 관련해선 캐나다의 적법한 절차를 따라줄 것으로 믿고 있다. 중국에 구금된 캐나다 국민의 경우 현지 영사 조력을 통해 석방이 이뤄지도록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특히 사형 선고와 관련해 철학의 문제인데, 캐나다는 지난 50년 간 사형 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1998년 사형제도를 완전히 폐지했다. 때문에 중국 법원의 사형 선고에 대해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사형 집행이 되지 않도록 최대한의 보호 노력을 할 계획이다.”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오른쪽)가 12일(현지시간) 경호원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의 한 보호관찰소에 도착하고 있다. 지난 1일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체포된 멍 부회장은 1000만 캐나다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보석 허가를 받았다. [AP=연합뉴스]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오른쪽)가 12일(현지시간) 경호원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의 한 보호관찰소에 도착하고 있다. 지난 1일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체포된 멍 부회장은 1000만 캐나다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보석 허가를 받았다. [AP=연합뉴스]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G2의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되며 한국ㆍ캐나다 등 주변국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토 면적과 달리 캐나다는 작은 나라다. 지정학적 측면에서다. 1867년 국가 수립 이후 캐나다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거인(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88년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문제가 처음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브라이언 멀로니 총리는 개방을 선택했다. '모든 고립에는 비용이 반드시 따른다'는 믿음에 따라서였다. 빈부격차가 확대되면서 보호무역주의가 부상하고 있지만, 시장 확대가 필요한 건 캐나다 기업 뿐 아니라 미·중 기업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북한과 천안함 폭침 계기로 외교관계 단절"

 캐나다는 한국 전쟁 때 세번째로 파병을 많이 한 주요 우방국이다. 지난해 주한 유엔사령부 부사령관에 비(非)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캐나다 장군 웨인 에어 중장이 부임했다. 캐나다는 2021년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도 노리고 있다.

 캐나다는 ‘제한적 관여주의’ 대북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어떤 의미인가.

 “북한과 캐나다는 2001년 외교 관계를 수립했지만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을 계기로 평양에 대사 파견을 하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의 규범과 공동의 책임을 중시하는 캐나다의 대외 정책에 따른 것이다. 특히 북한의 인권 문제를 염려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한편 제재 준수 감시를 위해 해군 군함을 파견하는 등 외교·군사적으로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지원하고 있다. 캐나다는 제2차 세계대전 최초의 핵 개발사업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고도 핵을 포기한 유일한 나라다. 국제적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주도하고 있다.”

북한 비핵화 관련 북한·캐나다 외교관이 지난해 접촉했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있었다.

“민감한 사안이라 세부사항을 밝힐 수 없지만 북한과 접촉한 것은 맞다.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채널을 통했다.  ”

 대나허 대사는 99년 베트남 공관에 근무하며 평양을 비공식 방문, 2년 뒤 캐나다와 북한이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과정을 도왔다.

 “99년은 남북 해빙무드 초반으로, 한국의 김대중 정부는 더 많은 서방 국가들이 북한과 교류하기를 원했다. 베트남에 주재하던 내가 상무대표부로 방문을 하게됐다. 평양의 국제백화점에서 당시에 온갖 종류의 소비품을 팔고 있었다. 가격이 매우 비싸 ‘누가 대체 이걸 사나’ 놀랐다. 유엔 대북제재가 있기 전의 일이다. 한쪽에선 환전상이 캐나다 달러를 취급하고 있었는데, 외화가 유입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지난해 평창올림픽으로 입소문, 한국 관광 늘어

지난해 12월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출하는 대나허 대사(왼쪽)와 그의 막내 아들 스테판(오른쪽). 대나허 대사는 "마침 그날이 아들의 생일이어서 함께 갔는데, 나중에 문 대통령이 아들과 악수하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셨더라. 아들의 헤어 스타일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트위터 캡처]

지난해 12월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출하는 대나허 대사(왼쪽)와 그의 막내 아들 스테판(오른쪽). 대나허 대사는 "마침 그날이 아들의 생일이어서 함께 갔는데, 나중에 문 대통령이 아들과 악수하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셨더라. 아들의 헤어 스타일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트위터 캡처]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한국과 양자 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인 보다 한국인 관광객이 캐나다를 더 많이 찾았다. 90년대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연간 15만 명의 캐나다인이 한국을 찾고 있다. 작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입소문이 많이 났다. 몇달 전 캐나다에서 방탄소년단(BTS) 콘서트가 인기를 끌었고 수도 오타와의 한국 문화원에는 다양한 인종의 청소년들이 모여드는 등 K-pop, 한국 음식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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