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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번 버스와 광주·전남 상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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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호
김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호 광주총국 기자

김호 광주총국 기자

이웃 도시인 광주광역시와 전남 나주시는 시내버스 운행 문제로 수년째 갈등을 겪고 있다. 나주 지역 시내버스인 999번 버스를 두고서다. 나주 영산포터미널에서 광주시 북구 용봉동에 위치한 전남대 후문까지 약 30㎞ 구간을 운행해 나주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버스다.

999번 버스가 현재 광주에서 설 수 있는 정류장은 15곳. 나주시는 시민 편의를 위해 39곳으로 늘려달라고 요구한다. 광주시는 지역 버스 업계의 수입 감소를 우려하며 거부하고 있다. 양측은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 문제는 결국 국토교통부 시내버스 노선조정 심의위원회까지 가 있다.

지루한 다툼이 이어지는 999번 버스 문제와 함께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지난해 8월 이용섭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가 만난 광주·전남 상생발전위원회 자리다. 두 단체장은 ‘새천년을 위한 도약, 광주·전남 상생협력’이라는 문구가 적힌 배경 앞에서 환한 표정으로 껴안으며 사진을 찍었다.

당시 광주시는 ‘민선 7기 광주·전남 상생호가 닻을 올렸다’고 홍보했다. 광주·전남의 협력이 필수인 현안들이 술술 풀릴 것 같았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광주 군 공항 이전 사업은 진척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후보지로 꼽히던 지역 단체장인 김산 무안군수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김 지사도 “해당 지자체의 뜻이 중요하다”며 한 발짝 물러선 입장을 보였다.

한국전력공과대학(한전공대) 설립 문제를 두고도 양측의 뚜렷한 상생·협력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오는 28일 부지 결정을 앞두고 광주시와 전남도가 각각 3곳씩 후보지를 냈을 뿐이다. 한전공대 설립 문제는 지난해 8월 언급한 9개 신규 협력과제 중 하나다.

오히려 신경전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도 있다. 이 시장은 최근 한전공대의 설립을 앞두고 전남도·한전과 기본협약을 체결한 뒤 “한전이 부지를 결정하면 따르기로 합의했다”면서도 “광주가 통 큰 양보를 해 나주에 혁신도시가 건설됐고 한전도 유치했다”고 언급했다. 김 지사도 양보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광주와 전남은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두 단체장의 보여주기식 상생·협력이 아닌, 시너지 효과를 내는 진짜 상생·협력을 시도민은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광주·전남의 상생·협력 약속은 999번 시내버스 문제도 해결 못 하는 단체장들의 정치 이벤트”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김호 광주총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