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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늘 거기서 사달이 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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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차장대우

이동현 산업1팀 차장대우

사람들이 모두 올라타자 출입문이 닫히고 잠시 후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 미터쯤 갔을까. 버스는 급정거를 하더니 ‘신경질적’으로 혼을 울렸다. 빵-

북아프리카계 이주 노동자로 보이는 남자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있던 남자는 몇 초쯤 버스를 노려보다 옆으로 비켜섰다. 버스가 다시 출발하자 빗자루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더니 알 수 없는 언어로 소리를 질렀다. 분이 안 풀린 듯 기둥에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2018 파리 국제 모터쇼’에서 프랑스 모빌리티 기업 나브야(Navya)는 ‘오토놈 셔틀’이란 이름의 자율주행 전기버스를 선보였다. 모터쇼가 열린 포르트드 베르사유 박람회장 전시관 내부를 오가는 셔틀버스였다. 버스 안엔 커다란 액정표시장치 패널만 있을 뿐 운전자도, 스티어링휠도 없다.

자율주행차는 앞에 나타난 장애물을 인지한다. 멈추고, 비키라는 신호를 보낸다(보내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다). 청소에 몰두하던 남자는 갑자기 울린 ‘신경질적인’ 혼 소리에 소스라치듯 놀랐다. 앞을 쳐다봤지만 운전석엔 아무도 없었다. “나 같아도 화가 났을 거 같아요. 기계 따위가 사람에게…”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영국 자동차 기자가 말했다. 오토놈 버스가 의도적으로 감정을 표현했을 리 없다. 장애물의 크기와 종류를 인지해 멈추고 설계된 대로 동작했을 뿐이다. 무감정한 기계의 동작에 감정을 이입하는 건 인간이다.

자율(自律)주행이라지만 영어로는 자동(autonomous)주행이다. 의지나 감정을 담은 말이 아니다. 초음파로 장애물을 인지하는 ‘레이더’와 레이저로 장애물의 양감(量感)을 측정하는 ‘라이더’에 카메라와 영상처리 프로그램을 더 하면 자동차는 저절로 움직인다. 여기에 ‘빅데이터’가 더해지면 ‘자동주행’은 더 정교해진다. 진입장벽은 생각보다 낮고, 예상보단 높다. 금방 현실이 될 것 같지만,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가 살아생전에 잠든 채, 혹은 독서를 하면서 내 차로 집에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기술은 발전한다. 더 중요한 건 사회적 수용과 합의다. 자율주행버스가 청소노동자를 ‘장애물’로 인지하지 않는다면 - 않도록 프로그래밍된다면 - 이렇게 작동했을 거다.

“수고 많으십니다. 위험하니 잠시 옆으로 비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무서운 건 기계가 아니라 청소노동자를 ‘장애물’로 생각하는 - 혹은 그가 사람이란 사실을 잊는 - 사람이다. 늘 거기서 사달이 난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