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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한·일 관계, 베버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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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탐사보도 에디터

고정애 탐사보도 에디터

이 글은 일종의 취재 후기, 더 정확하겐 ‘여기(餘記)’ 쯤 된다. 독일의 대학자 막스 베버가 ‘소명(직업)으로서의 정치’란 강연을 한 지 100년(1월 28일)을 맞아,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제자인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을 최근 만났더랬다. 둘은 2011년 동명의 저작을 공저했다. 대부분의 대화는 기사화했지만 한 주제는 빠졌었다. 바로 오늘 하려는 얘기다.

제 1차 세계대전 패망과 제국의 붕괴, 신생 공화국의 혼란 속에 있던 베버는 당시 외교문서 공개 움직임에 반대했다. “절대 윤리론자라면 모든 문서는 공개돼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가라면 달리 생각한다. 공개된 문서들이 악용되고 그러면서 분출된 열정으로 인해 틀림없이 진실이 무엇인지 더 모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일 위안부 협상이 떠올랐고 두 학자에게 질문했더니 이렇게 답했다.

▶최장집=“베버식으로 한·일 관계를 보면 이념적이고 관념적이라고 할까 이런 걸 벗겨버리고 실제 권력관계를 보는 것이고, 그럴 때 국가이익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느냐는 기준에서 볼 필요가 있다. 좋은 외교라고 한다면 한·일 관계가 식민지 경험을 해서 감정이 좋을 순 없지만, 이 차원을 가급적 약화시키면서 다른 차원으로 접근하고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냉전이 해체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일 관계가 한국의 측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관계로 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지 않나.”

▶박상훈=“양국 간 정치인이나 군사지도자들이 서로의 당당함을 경쟁적으로 주장하고 어딘가에서 양국 시민들이 인권 등 보편적 관심에 대한 공통 이해는 줄고 서로의 입장만 달라진다면 그건 애초 좋은 한·일 관계를 전제할 때 목표와는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좀 더 나은 동아시아의 국가 간, 국민 간 공통의 기반을 넓히는 게 (외교의) 역할이어야지 과거의 책임을 더 부과받아야 하는 일종의 항변? 또는 반문? 이런 것으만으론 외교가 이뤄질 순 없지 않을까, 안타까운 부분이다.”

베버

학자들의 언어라 어렵다. 그러나 요체는 분명하다. 감정을 덜어내고 이성적 접근을 하자는 게다. 공감한다. 현 정부 들어 불거진 일련의 한·일 갈등에선 일반인 이상으로 정치리더십도, 정부도 ‘항일 의지’를 불사르곤 했다. 국방부는 대북 자세와는 완연히 다른 임전 태세였다. 언제까지 그리 갈 순 없다. 우리부터라도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정치리더십 말이다.

고정애 탐사보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