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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믿고 지주사 전환했는데…혜택 없애고 규제만 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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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정부의 대기업 지배구조 정책에 재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세제 혜택 등으로 대기업집단의 지주사 전환을 유도해 왔다. 그러나 이를 20여년 만에 수정할 뜻을 밝히고 있다.

“대기업 경제력 집중만 더 키워” #공정위, 장려정책 중단 검토 #금융업 진출 제한 등은 여전

신봉삼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장은 “과거엔 순환출자 해소, 기업 구조조정 등에 장점이 커 지주사 전환을 유도했지만, 최근엔 지주사 체제가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더 키운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며 “지주사 전환 장려 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정부 기조는 최근 공정위 연구용역 보고서에서도 나타났다. 연구를 맡은 신영수 경북대 교수가 지난 23일 발표한 용역 보고서에는 “지주사 전환 유도 정책 기조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다”고 적시돼 있다. 미국·독일·일본 등 해외 사례를 조사한 결과, 기업이 스스로 지주사 전환을 선택하는 나라가 대부분이란 것이다.

한국에서 지주회사 설립이 허용된 건 외환위기 이후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당시 대기업 ‘도미노 부실’ 원인으로 순환출자 구조를 지목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회사와 이를 관리하는 지주회사’ 형태의 단순한 기업 지배구조를 장려했다. 지주회사가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금의 일정 비율을 과세소득에서 제외해 주는 등 세제 혜택도 부여했다. 이런 과정으로 SK·LG·GS그룹 등 주요 대기업이 속속 지주사로 전환했다.

재계도 지주사 체제를 기업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는 방향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지주회사에 적용되는 세제 혜택만 폐지하고 규제만 남겨두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현재 일반 지주회사에 대해 금융 자회사 지배를 금지하고 있다. 금융지주사에 대해서는 금융업 이외의 사업을 영위하는 자회사를 지배할 수 없게 했다. 지주회사에 속한 손자회사가 자회사(증손회사)를 보유하는 것 역시 금지돼 있다. 재계는 이런 사전 규제도 미국·일본·유럽 등에선 볼 수 없는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라고 지적한다.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지주회사가 유지해야 할 부채비율을 현행 200%에서 100%로 낮추는 등 건전성 감독 기준을 높이거나, 지주회사가 손자회사를 보유할 때는 반드시 사업 연관성이 있는 회사로 강제하는 법안이 계류 중이다. 이는 “주요국은 지주회사를 직접 규제 대상으로 하는 대신, 일반 회사법과 소송 등 보편적인 방식으로 대응하는 점이 사뭇 다르다”고 밝힌 공정위 연구용역 결과와 배치되는 지점이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에어프랑스-KLM그룹(프랑스)이나 편의점 세븐일레븐으로 유명한 세븐앤아이홀딩스(일본)는 금융 계열사와 본업을 융합해 사업 시너지를 높이고 있다”며 “산업과 금융 간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에 국내 지주회사만 이런 낡은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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