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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로 들인 조카가 언니 사망보상금 다 가져간다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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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배인구의 이상가족(68)

저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하나뿐인 언니와 같이 서울에 상경하여 궂은일 가리지 않고 일한 덕에 20대 후반에 서울 변두리에서 작은 식당을 했습니다. 그때는 오로지 굶지 않기 위해서, 월세를 전세로 바꾸기 위해 밤낮없이 일만 할 때였습니다. 변두리에 보잘것없는 백반집이었지만 저와 언니는 이제야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언니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보험회사는 언니 사망보험금을 유일한 상속인인 불효막급한 조카에게 준다고 합니다.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조카는 언니의 친아들이 아닌데 친아들로 되어 있으니 그것을 바로잡으면 되지 않겠느냐고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진 pixabay]

언니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보험회사는 언니 사망보험금을 유일한 상속인인 불효막급한 조카에게 준다고 합니다.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조카는 언니의 친아들이 아닌데 친아들로 되어 있으니 그것을 바로잡으면 되지 않겠느냐고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진 pixabay]

그러자 언니는 제게 결혼하라고 성화였습니다. 언니부터 가라고 하면 언니는 이미 혼기가 지났다고 하면서 아직 좋은 때인 너나 어서 좋은 곳에 시집가라고 하면서 여기저기 혼처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성실한 남편을 만나 저는 결혼을 했습니다. 혼자 남은 언니가 맘에 걸렸지만 제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하고 시집 식구들에게 잘하면서 아이들 낳고 살았습니다.

그 사이 언니는 식당에 단골로 오던 남자분과 많이 친해진 것 같았습니다. 그분은 주로 저녁에만 들르다가 반찬이 맛있다면서 아침밥도 우리 식당에서 드셨습니다. 자주 만나다 보니 그분이 유부남이라는 사실, 아내가 요양차 시골에 가 있는 사실, 병약한 아내가 아이를 가질 수 없었고 투병 기간이 꽤 길었지만 묵묵히 수발을 들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언니는 그분을 많이 좋아했고, 그분도 언니를 많이 아껴주었습니다. 아픈 아내와 이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 두 사람은 살림을 차렸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 사람 사이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언니가 무슨 맘을 먹었는지 입양을 하겠다더니 형부와 사이에 자기가 낳은 아이로 형부 호적에 올렸습니다. 그렇게라도 형부 호적에 연연했나 싶어 안쓰러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언니에게 온 조카는 어릴 적 귀염으로 평생 효도를 다 했나 봅니다. 사춘기 때부터 가출을 밥 먹듯이 하더니 고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는 거의 나가 살다시피 했습니다. 그리고 돈이 필요할 때만 와서 언니의 쌈짓돈을 헐어갔습니다. 불쌍한 언니는 그래도 자식이라고 그런 조카를 맘에 품었고 항상 조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 언니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보험회사는 언니 사망보험금을 유일한 상속인인 불효막급한 조카 녀석에게 준다고 합니다. 형부와는 아직도 그렇게 사실혼으로만 지내고 있어서 형부는 상속인이 되지 못합니다. 보험회사가 지급할 언니 사망보험금이 그 조카에게 간다는 것을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조카는 언니의 친아들이 아닌데 친아들로 되어 있으니 그것을 바로잡으면 되지 않겠느냐고요. 그 말이 맞나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현행 민법은 미성년자를 입양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이러한 내용의 민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입양신고 대신 친생자 출생신고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입양의 의사로 신고하였다면 입양의 효력이 인정되었습니다. 따라서 친생자가 아니더라도 사례자 언니와 조카 사이에는 양모–양자 관계가 성립할 수 있고, 당연히 상속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 민법은 배우자 있는 사람이 입양할 때는 배우자와 공동으로 입양하여야 한다는 부부공동입양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습니다(제874조 제1항). 형부는 배우자가 있는 사람인데 그 배우자와 조카를 입양한 것이 아니라 언니와 입양을 했으니 이 점이 문제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언니는 법률상 배우자가 없습니다.

또 2008. 1. 1. 호적제도가 폐지되고 가족관계등록제도가 시행되면서 언니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조카가 자녀로 기록되고, 조카의 가족관계등록부에도 언니가 엄마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최근에 대법원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언니와 조카 사이에 개별적인 입양의 실질적 요건이 모두 갖추어져 있고, 언니가 형부와 공동으로 양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단독으로는 양모도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사를 인정하기 어렵다면 언니의 가족관계증명서에도 조카의 엄마로 기재되어 모자 관계가 공시되었으므로 언니와 조카의 관계에서 입양은 유효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2018. 5. 15. 선고 2014므4963 판결 참조).

즉 조카가 친생자녀가 아니라거나 언니가 형부랑 법률상 부부관계가 아니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니와 조카 관계가 실질적인 양부모-자녀 관계가 성립되었는지가 관건이고, 이미 양부모-자녀 관계가 성립되었다면 파양이 가능한지가 쟁점이 되겠죠. 그런데 이미 언니가 세상을 떠났으니 파양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참고되었기를 바랍니다.

배인구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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