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의 “스튜어드십 적극 행사”…과도한 ‘기업 길들이기’ 될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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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이 앞으로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 탈법과 위법에 대해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어제 청와대에서 열린 공정경제 추진전략 회의에서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에 명확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은 “틀린 것은 바로 잡고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의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경영진 일가의 사익 편취나 횡령·배임 같은 안건에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내용이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이유로 주주가치와 기금의 장기 수익성 제고를 내세우고 있다. 국민연금에 노후자금을 맡긴 국민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가게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정치적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는 기업의 경영권 위축, 나아가 ‘연금사회주의’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 위원장을 겸임하는 구조에서는 정부나 정치권 입김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 기금운용본부장 추천권을 지닌 국민연금 이사장도 정권에 따라 좌우되는 게 현실이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기업으로서는 민감한 사안이다. 상당한 기업에서 국민연금은 주요 주주다. 경우에 따라 경영권 향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어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의 회의에서는 대한항공·한진칼 등 한진그룹에 대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놓고 찬반 의견이 엇갈렸다. 국민연금의 경영권 참여가 그만큼 논란거리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국민연금의 가장 큰 임무는 국민이 맡긴 재산을 잘 관리하고 불리는 일이다. 연금의 사회적 책임도 좋지만, 어디까지나 장기수익성이 판단의 중심이 돼야 한다. 대통령 발언이 기업 경영 자율성을 위협하는 과도한 가이드라인이 되는 일은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