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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캐니언 추락···"국가가 어디까지 책임"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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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대학생 박모씨가 사고를 당한 미국 그랜드캐니언의 전경. [중앙포토]

지난달 대학생 박모씨가 사고를 당한 미국 그랜드캐니언의 전경. [중앙포토]

미국 애리조나주 그랜드캐니언 절벽에서 발생한 추락 사고로 의식 불명에 빠진 동아대 학생 박모(25)씨를 도와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논란이다. ‘해외에서 발생한 국민의 사고를 국가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나’라는 게 논란의 요지다.

‘25살 대한민국의 청년을 조국으로 데려 올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는 해당 청원은 23일 현재 1만6000명 이상이 동의했다. 이 청원은 지난 17일 시작됐지만 사건이 이슈화 되면서 청원 동의에 속도가 붙었다.

청원자는 “박씨의 가족들이 현지로 급히 가서 지켜보고 있지만 몇 차례의 수술과 꾸준한 치료에도 뇌사 상태에 있어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다”며 “25살 이 청년이 잘잘못을 떠나 타국에서 당한 안타까운 사고로 인해 개인이 감당하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대한민국의 청년과 그 가족이 국제 미아 신사가 돼 엄청난 고통 속에 몸부림치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전했다. 또, “국민은 국가에 대해 의무를 다하고 국가도 자국민을 보호하는 게 의무라면 박씨가 고국으로 돌아오도록 도와주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박씨의 동생이라 주장하는 인물도 자신의 SNS에 “여행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청원 동의를 요청했다. 해당 내용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졌다. 해당 글은 SNS에서 지워진 상태다.

청원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동의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안타깝지만 국가가 세금으로 도울 일은 아닌 것 같다”, “여행사가 인솔을 잘못했다면 여행사와 공방을 할 일이지 국가에게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다”, “개인 모금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청원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의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의 핵심은 “국가가 국민 보호 의무를 소홀히 했는지 여부”라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해외에서 사고가 난 경우 현지 영사관이나 대사관의 대처 소홀이나 과실이 있는 게 아닌 한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은 다른 민사사건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이번 사고의 경우 여행자보험을 들던지, 여행사와 민사 소송을 하던지 하는 대처를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거꾸로 얘기하면 이런 사고들이 산에서도 물가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데 국내에서 발생한 일도 일일이 책임질 수는 없지 않느냐”며 “사건 사고에 국가의 과실이 있을 때 보상하는 것이 형평에 맞다”고 강조했다.

[사진 중앙일보]

[사진 중앙일보]

이런 논란은 처음 발생한 게 아니다. 지난 2007년 ‘샘물교회 탈레반 피랍 사건’ 당시에도 국가가 국민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나라는 논란이 일었다. 샘물교회 사건의 경우 당시 국정원이 탈레반 세력에게 인질 석방의 대가로 거액을 지불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온라인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국가의 국민 보호에 있어서 일반 사건과 테러는 구분이 된다”며 “개인이 부당하게 해외에서 테러를 당할 때 돕는 건 국가의 국민 보호 의무에 해당한다”고 답했다. 다만 “샘물교회의 경우는 국가가 이미 여행 제한 구역으로 설정하고 알리는 등 국가의 의무를 다했기 때문에 (석방 대가가 지불됐다면) 세금을 쓴 일이 개인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김선일씨 피랍 사건 당시에는 여행 제한 구역도 아니었고 개인이 당한 엄청난 사건이었는데 그때는 국가가 강하게 나섰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견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외교부는 23일 이 사건과 관련 “주로스앤젤레스총영사관은 사건을 인지한 직후 국내 가족들에게 사고 발생 사실 및 경위 등을 알리고 미국 입국에 필요한 행정절차 안내 등 영사조력을 지속 제공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또 “애리조나주 영사협력원을 현지 병원에 파견하여 우리국민 사고 현황을 상세 파악하고, 가족을 위로했다. 주로스앤젤레스총영사관은 향후에도 필요한 영사조력을 계속 제공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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