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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오리 가속기' 를 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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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골은 아무나 넣는 게 아니다. 내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성향이 있어야 골게터다." 축구 감독 차범근의 말입니다. 축구팀의 맨 앞줄에 있는 골게터는 문제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의식이 있어야 득점을 하고 팀이 승리합니다. 골게터의 문제의식은 '저 골대에 이 공을 넣겠다'는 집중력입니다.

과학자 민동필(59.서울대 물리학과 교수)과 디자이너 박인석(52.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도 골게터입니다. 그들은 열정적인 지식의 골게터입니다. 지식 골게터들의 문제의식은 '제대로 된 과학예술 도시 하나 만들겠다'는 집중력입니다.

이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가속기(Accelerator)'를 아시나요? 수소나 헬륨 같은 극미(極微)한 물질을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해 서로 충돌시키면 그 물질이 파괴되거나 에너지 변환에 의해 새로운 '미지의 물질들'이 생성된답니다. '회오리'는 극미 물질이 가속될 때 마치 열대성 저기압인 회오리 모양이 연상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극미 물질을 가속하고, 충돌시키며, 생성된 미지의 신물질을 들여다 보려면 특별한 장치가 필요한데 그게 가속기입니다. 가속기는 극미 물질의 저 깊은 속까지 보려는 사진기입니다. 그 정밀한 사진기는 모든 과학 분야에 필요한 도구이기도 하지요.

세계에서 가장 큰 가속기는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 입자핵물리학 연구소(CERN)'에 있습니다. '다빈치 코드'로 유명한 댄 브라운의 또 다른 소설 '천사와 악마'는 이 가속기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속기는 직경 8km에 길이 27km에 이르는 도넛처럼 생긴 원형 튜브다. 세계에서 가장 큰 기계다. 프랑스와 스위스 영토에 걸쳐 있으며 제네바 시를 지하에서 둘러싸고 있다."

지식의 골게터들은 회오리 가속기를 대한민국에 건설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지금 포항공대에 '방사성 가속기'가 있고 경주에선 '양성자 가속기'가 건설 중에 있지만 민 교수와 박 교수의 문제의식은 그 너머에 있습니다.

미래에는 과학과 다른 모든 학문이 만나야 하며, 그것도 첨단에서 만나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회오리 가속기는 '빅뱅 100만분의 1초 후의 우주 상태'를 규명하려 합니다. 빅뱅은 우주를 탄생시킨 대폭발이지요. 빅뱅 후 100만분의 1초가 흐른 신생 우주에 떠다녔던 미지의 물질들을 찾아내는 일이지요. 그 물질들을 찾아낸다면 인류가 꿈꿔온 우주 탄생의 비밀에 접근하는 겁니다.

회오리 가속기는 부산물로 방사능 위험이 있는 원자력발전소의 폐기 물질을 인체에 무해한 물질로 변환하는 기술도 개발할 수 있습니다.

회오리 가속기는 축구 꿈나무들에게 잔디구장을 지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자라나는 과학도에게 실패의 자유와 성취의 자신감을 안겨 주는 실험과학의 놀이터이지요. 과학 비즈니스 시대의 국가 인프라입니다.

지식의 골게터들은 일본이 155개나 갖고 있는 '연구소용 가속기'를 한국도 하나쯤은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박한 물음을 한국 사회에 던지고 있습니다. 한국이 일본에 축구만 이기면 뭐 합니까. 연구용 가속기는 0대 155인걸요.

회오리 가속기 프로젝트는 제네바 같은 도시 하나를 통째로 만드는 일입니다. 경부고속도로나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과 같지요. 꿈과 의지, 치밀한 계획과 용감한 투자, 국민의 지지가 있어야만 가능한 국책 사업이랍니다.

그래서 차기 대통령에 도전하는 정치인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회오리 가속기 도시 만들 꿈 한번 꾸시지요.

전영기 정치부문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