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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대법원장이라 가능했다"… 양승태 검찰 조사 신풍경 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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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왼쪽)과 문무일 검찰총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예정된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과 대검찰청으로 각각 출근을 하고 있다. [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왼쪽)과 문무일 검찰총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예정된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과 대검찰청으로 각각 출근을 하고 있다. [뉴스1]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여부가 늦어도 24일 새벽에 결정된다. 지난 11일 양 전 원장이 검찰에 출석한지 13일 만이다.

검색어 압수수색·포토라인 패싱·36시간 조서열람 #법조계 "양승태 수사하며 만들어진 새로운 풍경" #"힘 있는 자가 인권침해 받을 때 논란되는 역설"

법조계에서는 양 전 원장이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과거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모습들이 나타났다고 입을 모은다.

검찰과 출입 기자단이 세운 포토라인 패싱, 36시간에 가까운 조서 열람,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과정에서 법원이 발부한 '검색어 지정' 압수수색 영장 모두 전례가 없었다는 것이다.

사라져야 하는 오랜 관행에 대한 환기와 피의자의 권리가 부각됐다는 지적도 있지만, 한편에선 법적 지식으로 무장한 전직 대법원장이라 가능했던 특권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한 현직 판사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잘못된) 수사 관행은 바뀌어야 하며 피의자의 인권 보장은 개선되어야 한다"면서도 "인권의 발전은 역설적이게도 인권침해를 강하게 주장할 수 있는 권력자들이 당하는 인권침해에서 이루어진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검찰 포토라인은 1993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검찰 출석 중 몰려든 취재진에 부상을 입은 뒤 정착했다. 이후 존폐여부를 두고 논쟁이 지속됐는데 양 전 대법원장이 11일 검찰 포토라인을 무시하고 대법원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검찰에 출석해 논란이 증폭됐다.

전직 대통령까지도 검찰 포토라인에서 입장을 밝혔던 관행이 깨지며 포토라인이 국민의 알권리보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이 부각됐다.

부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피의자들이 검찰 포토라인에서 '성실히 조사받겠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처분 권한을 가진 검찰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측면이 있다"며 "법적으로 어떤 혐의가 적용되고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를 아는 양승태라 패싱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양 전 원장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조서를 36시간 가까이 열람한 사실 역시 법조계에서는 화제가 됐다. 검찰 관계자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는 피의자가 자신의 조서를 그렇게 오랜시간 열람한 전례는 기억에 없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설치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의 영장실질심사 포토라인. [뉴스1]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설치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의 영장실질심사 포토라인. [뉴스1]

양 전 원장은 조서 내용에 대한 수정 요청 사항도 많지 않았다고 한다. 혐의를 부인하는 상황이라 답변이 대부분 비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 전 원장은 변호인들과 함께 검찰에 수차례 출석해 조서를 외우듯이 열람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예정된 구속영장심사에 대비해 검찰의 논리와 증거를 모두 확인하고 대비하겠다는 차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주필 변호사(법무법인 메리트)는 "일반 피의자들은 법적 지식이 적어 조서를 오래 본다고 해도 그 행간과 자간의 숨은 뜻을 알아채기 어렵다"며 "열람 권한은 보장되지만 그렇게 오랜시간 조서를 살펴본 피의자는 양 전 원장 외엔 없을 듯 하다"고 했다.

대한변협 사법인권팀 위원인 양홍석 변호사는 양 전 원장의 '36시간 조서 열람'을 특권이라고 비판했다. 양 변호사는 "다른 일반인도 검찰 조사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 조서를 열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구속영장 심사에 대비해 실제 조서를 외웠다고 한다면 법적 권한을 남용했다고 볼 소지도 있다"고 했다.

검찰에선 양 전 원장이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보장된 피의자의 권리를 보장해준 것이란 입장이다. 양 전 원장이 조서 열람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법적으로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전 영장심사를 받기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오고 있다. 양 전 원장은 이날도 포토라인을 아무 말 없이 지나쳤다. 최승식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전 영장심사를 받기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오고 있다. 양 전 원장은 이날도 포토라인을 아무 말 없이 지나쳤다. 최승식 기자

하지만 양 변호사는 "검찰의 말이 형식적으로는 맞지만 여전히 조사에 참석해보면 권력자와 권력이 없는 일반인에게 적용되는 형사 절차는 다른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과정에서 법원이 검찰에 발부한 '검색어 지정'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 법원 내부에서도 '전례가 없다'는 말이 나왔다.

법원은 영장을 발부할 때 일반적으로 검색어가 아닌 범죄의 관련성을 두고 압수수색의 범위를 제한한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범죄와 관련 없는 증거가 나왔다면 채택하지 않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번 수사에서 법원이 검찰에 발부한 영장 대부분은 '검색어 지정' 방식의 영장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검색어로 압수 영장을 제한하면 수사 과정에서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다"며 "범죄 연관성을 바탕으로 영장이 발부됐던 다른 사건과 이번 수사는 다른 점이 많았다"고 밝혔다.

박병대 전 대법관이 23일 오전 영장심사를 받기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오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은 법원에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다. 최승식 기자

박병대 전 대법관이 23일 오전 영장심사를 받기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오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은 법원에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다. 최승식 기자

법원은 또한 검찰에 하드디스크 전부 압수 영장은 단 한건도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현직 판사들 사이에서도 영장 발부에 대해 "판사들이 직접 수사를 당해보니 깨달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며 자조섞인 말이 나왔다.

양홍석 변호사는 "압수수색의 범위를 좁게두는 것은 큰 방향에서는 찬성한다"면서도 "사법부가 자신의 이해 관계와 얽힌 사건에 보다 엄격히 법 적용을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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