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짝퉁' 상품이 뭐가 나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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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가짜 명품 가방 제조업자가 경찰에 적발됐다. 경기도 안양경찰서 수사과에 증거품으로 압수된 가짜 루이비통 제품과 원단.지퍼 등 부속품 등 압수품을 수사관이 정리하고 있다.

틴틴 여러분, 혹시 가짜 상품(짝퉁)을 써보셨나요? 여러분도 길거리에서 복제 비디오 테이프 같은 걸 사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품질은 좀 떨어지지만 값이 무척 싼 게 짝퉁 제품의 특징이지요.

그런데 요즘 세계 각국이 짝퉁을 뿌리뽑기 위한 위한 전쟁에 나서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2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미.EU 정상회담에서 각종 명품과 의약품에서 자동차.비행기 부품에 이르는 위조 상품 근절 대책에 합의했지요. 한국도 짝퉁을 적발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습니다. 관세청은 2월 관세청 차장을 본부장으로 하고 98개 조사반 446명으로 편성된 '가짜상품 특별단속본부'를 출범시켰습니다.

짝퉁은 과연 왜 나쁠까요? '비싼 제품을 싸게 이용하는데 뭐가 문제일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짝퉁은 사회에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성윤갑 관세청장은 "요즘 주요 가짜 상품이 명품에서 의약품.자동차 부품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짜 상품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에 조사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과 EU도 지적재산권 침해 문제가 전 지구적인 문제라는 데 공감하고 함께 대처하기로 했답니다.

과거에는 시계.가방.의류 같은 소비재 품목에 한정되던 짝퉁이 최근에는 담배, 의약품, 자동차.항공기 부품, 전자제품, 첨단 정보기술(IT)제품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EU 내에서는 2000년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콩코드 여객기 추락사고(113명 사망)도 위조 부품이 원인이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합니다. 미국 항공사의 비행기에서 떨어져 나온 부품이 활주로에 방치돼 있다 콩코드 바퀴가 터졌고, 그 파편이 연료 탱크를 터뜨렸다는 게 당시 사고조사 결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떨어져 나온 부품이 위조품이었다는 겁니다.

위조상품으로 인한 비행기 추락 사례는 여러 건 있지요. 1989년 노르웨이 오슬로를 출발해 북해 상공을 날아가던 콘베어580 여객기가 추락해 탑승객(55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조사결과 운항 도중 기체와 꼬리를 연결하는 볼트가 부서지면서 꼬리가 떨어져 나갔는데 문제는 그 볼트가 짝퉁이었답니다. 생각만 해도 오싹한 얘기가 아닙니까?

또 EU는 매년 20여만 명이 짝퉁 산업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특정 제품에 대한 짝퉁이 싸게 팔리면 정작 진짜 제품은 잘 팔리지 않게 되고, 진짜 제품을 만드는 회사는 문을 닫거나 직원을 줄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연구.개발(R&D)을 통해 신제품을 만들려는 기업들의 의지도 많이 꺾이겠지요.

한국도 피해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 IT상품이나 자동차 등의 짝퉁이 크게 늘어 지난해 한 해 동안 한국 기업의 피해가 17조원(17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정부는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짝퉁의 문제가 심각해지는데도 불구하고 짝퉁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세계관세기구(WCO)는 짝퉁이 현재 전 세계 교역량의 5~7%에 달하며 금액도 연간 500조원(5000억 달러)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EU 국경에서 압수된 짝퉁은 98년 1000만 개에서 2004년 1억300만 개로 10배 넘게 급증했다고 합니다.

짝퉁이 크게 늘어나는 이유는 적은 노력으로 많은 이익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위조에 대한 처벌이 가벼운 것도 주요 이유입니다. 미국은 84년까지 위조를 금지하는 형법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90년대 말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신청했을 때 위조를 단속하는 법률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첨단기술의 보급으로 짝퉁 만들기가 매우 쉬워졌지요. 컴퓨터 그래픽 소프트웨어는 기업의 로고를 복사하기 쉽게 하고 첨단 디지털 프린터는 상품 포장재를 순식간에 찍어 내지요. 첨단기기는 약간의 돈이 있고 간단한 조작법만 익힌다면 누구라도 쓸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첨단기기 덕에 짝퉁도 겉모습만 봐선 진짜와 구별하기 힘들 정도인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 국제 무역의 세계화 바람이 일면서 짝퉁은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거래될 수 있기 때문에 짝퉁 유통이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명품 짝퉁이 인터넷을 통해 불법 거래되고 있으며 명품업체의 피해 규모가 한 해 5000억 엔에 달한다고 합니다. 한국도 관세청이 인터넷 가짜 상품 검색 시스템을 개발해 4만5000여 개의 우범 사이트를 실시간 조회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관세청 관계자는 "가짜 상품은 정부가 아무리 단속을 해도 계속 사겠다는 소비심리가 있는 한 근절되기 어렵다"며 "가짜 상품을 찾는 소비 심리는 가짜 상품을 양산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수익이 범죄자금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시발점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무심코 산 짝퉁으로 인한 피해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겁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여러분이 큰돈을 들여 좋은 제품을 개발했는데, 짝퉁이 갑자기 쏟아져 나와 회사가 망하게 됐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니 짝퉁은 없어져야 겠죠.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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