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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에 들어온 미사일 레이더 추적 기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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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타구의 궤적·스피드 등을 분석하는 덴마크 레이더 장비업체 트랙맨의 타구 추적 시스템. [사진 트랙맨]

타구의 궤적·스피드 등을 분석하는 덴마크 레이더 장비업체 트랙맨의 타구 추적 시스템. [사진 트랙맨]

덴마크 코펜하겐 북쪽의 베드벡은 인구 3만 명인 작은 도시다. 한적한 시골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세계 스포츠 산업의 판을 흔드는 한 회사를 만날 수 있다. 바로 레이더 장비업체인 트랙맨(trackman)이다. 회사 안으로 들어서면 프런트 데스크에 이 회사의 모토가 새겨져 있다.

스포츠 산업이 미래 먹거리다 ② #골퍼 출신이 세운 덴마크 ‘트랙맨’ #공 궤적 분석해 각종 데이터 추출 #PGA투어·MLB 등에 시스템 제공 #160명 가운데 연구인력만 120명 #테니스·축구 등으로 영역 넓혀가

‘잠재력을 부추겨라(Unleash the potential)’. 첨단 기술이 각축을 벌이는 스포츠 산업에서 트랙맨은 독특한 분야를 개척했다. 레이더 장비업체인데 공(球)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한다. 날아가는 공 하나에서 위치, 스피드, 각도 등 수십 가지 데이터를 추출해 분석한다. 단순한 공의 비행에서 유의미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이 업체가 동원하는 건 이지스함에 사용되는 미사일 추적 레이더 기술이다. 미사일의 실시간 비행 상황을 포착하는 기술을 스포츠에 적용한 것이다.

트랙맨 시스템. [사진 트랙맨]

트랙맨 시스템. [사진 트랙맨]

클라우스 요르겐센 최고경영자(CEO)는 2003년 동생 모르텐, 레이더 엔지니어 프레드릭 툭센과 함께 트랙맨을 창업했다. 덴마크 본사에서 만난 요르겐센 CEO는 “우리 집 주차장에서 시작했던 실험 하나가 직원 160명이 일하는 비즈니스로 커졌다”며 웃었다. 덴마크 골프 국가대표 출신인 요르겐센 CEO는 “어릴 때부터 골프를 쳤는데, 어떻게 하면 멀리 똑바로 칠 수 있을지 고민해왔다. 실시간으로 관련 데이터를 모을 수 없으니 피드백해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도움이 될 만한 기술이 있을까 찾다가 레이더 추적 시스템이 눈에 들어왔다”며 “미사일 추적 같은 군사용으로 개발된 기술을 우리가 스포츠를 통해 평화적으로 쓰게 됐다”고 소개했다.

요르겐센 트랙맨 CEO. 베드벡=김지한 기자

요르겐센 트랙맨 CEO. 베드벡=김지한 기자

먼저 요르겐센 CEO의 전문 종목인 골프로 시작했다. 골프공의 탄도, 스핀, 거리, 스피드 등을 실시간으로 측정해냈다. 지름 4.2㎝의 골프공을 추적하기 위한 연구를 거듭해 단순화, 소형화로 시스템을 발전시켜나갔다. 2008년부터는 야구공에 도전했다. 야구공의 비행 궤적이 골프공과 비슷해 앞서 연구한 골프공 추적 시스템을 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격과 수비가 구분된 야구에선 날아가는 공에 관련한 데이터뿐 아니라 타자의 배트스피드, 공을 잡기 위한 외야수의 이동 거리 등의 데이터까지 얻을 수 있었다. 현재 메이저리그(MLB) 구단에 제공되는 데이터만 27가지다.

트랙맨 시스템을 적용한 실내 골프 연습장. [사진 트랙맨]

트랙맨 시스템을 적용한 실내 골프 연습장. [사진 트랙맨]

트랙맨의 타구 추적 시스템은 덴마크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주목받았다. 2006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선수들이 주요 고객이 됐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는 “내가 친 공의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어, 기술적으로 어떤 걸 보완하고 고쳐야 할지 알게 됐다”며 “트랙맨 시스템이 큰 도움을 줬다”고 칭찬했다. 트랙맨 시스템을 활용하는 전 세계 지도자가 5000명이 넘는다. MLB 30개 팀 전체와 마이너리그 팀까지 트랙맨을 활용한다. 한국 프로야구도 삼성 등 5개 구단에서 트랙맨 시스템을 활용 중이다.

트랙맨 본사. 베드벡=김지한 기자

트랙맨 본사. 베드벡=김지한 기자

요르겐센 CEO는 “본사 인력 160명 중 연구·개발(R&D) 인력만 120명이 넘는다. 그만큼 R&D 분야의 비중이 중요하고, 투자도 많이 한다”며 “최근엔 한국인 연구 인력도 보강했다”고 설명했다. 본사 연구소에서 개발한 장비는 인근 경기장에서 실전 테스트를 한다. 요르겐센 CEO는 “국가가 회사에 투자하는 등의 지원은 없다. 살아남기 위해 덴마크를 넘어 해외로 눈을 돌렸다. 야구 시장에 뛰어든 것도 미국 시장 개척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시장에 대한 투자는 계속 적극적 해나갈 계획이다.

트랙맨 레이더 추적 시스템. [사진 트랙맨]

트랙맨 레이더 추적 시스템. [사진 트랙맨]

트랙맨은 2016년부터 육상 포환던지기, 해머던지기 등으로 적용 종목을 넓혔다. 향후 축구, 미식축구, 크리켓, 테니스 등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요르겐센 CEO는 “기술과 데이터가 결합한 시스템은 앞으로 더 진화할 것이다. 아마추어든 프로든 자신의 분야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스포츠 산업계를 향해 “한국은 스마트한 나라”라며 “새로운 기술 영역과 시장에 대해서 열린 자세를 갖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트랙맨처럼 기술 혁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스포츠와 첨단 기술을 결합해 전문적인 영역을 개척한 사례는 더 있다. 호크아이는 크리켓에서 시작해 테니스, 축구 등으로 적용의 폭을 넓혀나간 판독시스템의 대명사다. 호크아이도 2001년 영국 햄프셔주의 소도시 롬지의 한 기업에서 탄생해 지금은 세계적인 판독시스템으로 성장했다. 이 밖에도 스위스 시계업체들도 정교한 계측과 판독을 위해 올림픽 때마다 기술의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코펜하겐=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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