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한국 기술을 기다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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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달 초 10여일간의 공산베트남 방문은 매우 모험적이고 긴장과 초조의 연속이었다. 월남전 당시 전폭기를 비롯한 모든 항공기의 발진기지였던 탄손누트공항은 그 위용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초라하고 삭막해 보였다.
베트남전쟁이 끝나고 통일이 된지 꼭 14년이 됐지만 빈곤의 누적은 전쟁이전보다 훨씬 심각해 보였다.
한때 동양의 파리로 각광과 찬사를 받아왔던 호치민시가 회색빛 폐허로 내버려진 채 가련스럽기만 했다. 그렇지만 35도의 뜨거운 햇살을 가르며 질주하는 시민들의 자전거 물결속에서 생동의 기미를 다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전후 일본과 한국이 겪었던 것처럼 인플레와 실업·빈곤등 경제적 불황이 베트남에서도 재현되고 있었다.
81년 11월 당시 환율이 미화 1달러에 베트남 화폐로 10동이던 것이 지난 1월에는 7년남짓사이에 3천5백동으로, 다시 4월에는 4천5백동으로 화폐가치가 떨어졌다. 당시국수 한 그릇에 30동하던 것이 지금은 3천5백동으로 무려 12배나 올랐다. 현재 교사를 비롯한 공무원과 근로자의 평균 월 급료가 20∼30달러정도이며 호텔과 레스토랑의 종업원이나 인턴의 급료는 4∼7달러 정도였다.
그야말로 시민들의 생활수준은 거의 밑바닥에서 헤매고 있는 형편이었다.
물론 구매력이 거의 없어 대외교역량도 빈약하여 외국인 투자유치도 기반조성이 이루어지지않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사회주의 방식으로는 생산의 촉진과 능률을 극대화할 수 없다는 결론에 접근한 베트남 당국은 최근 사기업의 인정과 역할을 수용하기로 결정한바 있다.
베트남은 전후 경제개발 5개년계획 추진에 모두 실패했으며 3차계획도 1년을 남겨둔 채 별다른 성공의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1인당 GNP 1백80달러정도의 경제상황에서 베트남은 대외문호개방을 급진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날로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4월5일에는 필리핀 에어라인이 호치민시의 취항을 시작했다.
호치민시의 표기도 이제는 정부당국이 양보, 사이공으로 표기하는 간판과 표지판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와같은 복고적 풍조에서 개방의 조짐을 쉽게 읽을수 있었다.
우리 정부당국도 베트남의 현실을 보다 정확히 진단하고 파악해야 할줄로 믿는다.
정부는 첫째, 지금까지의 대그룹과 대기업중심에서 벗어나 오히려 중소기업중심의 베트남진출이나 시장조사를 장려해봄직하다.
다음으로 소규모 건축과 보수사업, 기술지원과 노동집약분야의 투자, 관광개발사업에 대한 참여는 상당히 현실성이 강하며 베트남측이 기대하는 사업분야다. 그리고 한국인 2세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대책을 세워야 한다.
베트남은 상업성이 강하고 기술수준이 지나치게 높은 일본보다는 한국의 기술을 더 선호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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