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産 가짜 청자가 방송사 우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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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KBS1 방송의 'TV쇼 진품명품'에서 사상 최고의 감정가를 기록했다 가짜로 판명난 도자기로 인해 고미술계가 긴장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 수입된 가짜가 공중파 방송에서 진짜 판정을 받았다가 방송 직전 번복되는 일이 벌어졌다는 주장 때문이다.

한국 고미술협회 김종춘 회장은 "감정가 7억원으로 매겨졌던 이 도자기는 소장자가 두달여 전 2천3백만원을 주고 산 물건"이라고 말했다.

이 도자기는 당초 보물 제 346호로 지정된 청자상감동채운학문매병(靑磁象嵌銅彩雲鶴紋梅甁)과 비슷한 모양으로 희귀한 진사 문양이 들어가 '보물급 도자기'로 불렸다.

하지만 김회장은 "문제의 물건은 중국에서 3개월 전 들어와 부산의 한 상인에게 팔렸고, 중간 상인 두세 명을 거쳐 현재의 소장자에게 넘어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제작진은 "고려청자 자체는 진짜이며, 진사 문양만 가짜"라며 "병 안에 진사를 주입하는 정교한 수법을 사용해 엑스레이 촬영 등 정밀감정을 통해 가짜로 밝혀냈다"고 해명했다.

소장자는 50대 초반의 회사원으로 골동품 애호가인 부친에게 도자기를 물려 받았다고 했으며, TV 프로그램에는 부인이 대신 출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자기 감정을 맡았던 이상문 명품옥션 대표는 "소장자의 구입 과정은 모른다. 도자기의 진위 여부만 파악하는 것이 우리 몫"이라며 "간혹 소장자들이 구입 경위를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 프로그램의 박용태 PD도 "소장 경위를 잘 안 밝히려 든다. 일일이 파악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물건의 진위만 파악할 수 있다. 의심의 소지가 있는 물건은 걸러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미술품 감정은 이번 'TV쇼 진품 명품'만의 문제가 아니다. 도자기 전문가인 한국공예 장원훈 사장은 "공개가 안돼 그렇지 가짜 고미술품이 진짜로 둔갑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을 것"이라며 "고미술협회 감정도 네다섯명의 감정위원이 만장일치를 이룰 때만 인정된다. 그렇게 나온 감정도 참고사항이지 결정사항이 아니다"고 말했다.

상당수 '가짜 고미술품'은 국내에서 정교하게 제작돼 중국으로 내보내졌다가 다시 국내로 반입되는 경로를 따르기도 한다. 주문에 맞춰 연대별로 가짜를 만들어 돌리는 조직이 한국과 중국에서 연계 활동을 펴고 있다고 할 정도다.

도자기 전문가들은 감정시 도자기가 고루 잘 구워졌는지 색깔을 보고, 수리를 했는지, 도안에 예술성이 있는지, 그리기 어렵다는 인물이 그려져 있는지, 자료적 가치가 높은 명문이 있는지 등을 살핀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세밀히 관찰해도 갈수록 정교해지는 조작기법에는 감정이 완벽하다고 자신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국립중앙박물관 등 국가 기관은 진위 여부를 가리는 감정에 개입하길 꺼린다. 흘려 내뱉은 한마디가 감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나중에 책임 문제까지 생길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정양모 전 국립박물관장은 "경험 많고 양식있는 이들로 국가에서 문화재 감정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며 "이들이 소신껏 감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정 전관장은 "고미술품을 재산 가치로 볼 게 아니라 국가의 정신적 자산으로 여기는 사회풍토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KBS1은 28일 오전 11시 문제의 도자기가 가짜임을 밝혀내는 과정까지 담아 방송할 예정이다.

홍수현 기자

<사진 설명 전문>
감정위원들이 장식으로 사용된 진사(辰砂:구리를 재료로 문양을 나타낸 것)를 주목하고 있다. 가짜는 대개 진사를 밖에서 집어넣는데 이 도자기는 병안에서 진사를 주입하는 정교한 수법을 사용해 감정 전문가들을 혼란케 했다. 엑스레이 촬영 등 정밀감정 결과로 결국 가짜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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