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연일 대북 압박 정부는 며칠째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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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포동 2호 시험 발사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정찰위성이 촬영한 북한 함격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의 미사일 발사 시험장. [KBS TV 촬영]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임박했다고 알려진 18일 정부 외교안보 라인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휴일이지만 청와대는 송민순 안보실장을 비롯한 주요 참모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인 이종석 통일부 장관도 정부 중앙청사에서 간부들과 대책회의를 했다. 오후 늦게 이날 중 발사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정보가 들어오자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한 달 넘게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미사일 발사 징후에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잇따른 외신 보도로 미사일 발사 동향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안보 부처 당국자들은 한결같이 "정보사항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일각에서 정부가 '강 건너 불구경'식으로 무책임하게 대응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쏟아지자 속앓이를 하는 모습이다. 미국과 일본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정부는 무기력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당국자는 "우리 나름대로 발사 이후의 대응책을 면밀하게 세워 두고 있다"며 "지금 그런 내용을 공개할 시점은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대북 설득에 자신감을 잃어버린 듯하다. 5월 초 북한의 발사 움직임을 사전 감지한 정부는 당국 대화 채널로 북한에 이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남북 관계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입장이 매우 어렵게 된다는 점을 설명했지만 북한은 극단적인 쪽을 선택했다. 지난주 광주에서 6.15 공동행사가 열렸지만 미사일 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논의는 이뤄지지 못했다. 미사일 문제를 다룰 정도의 비중 있는 북측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사일 발사 이후 파장과 사태 수습을 위한 국제공조 등에 대한 정부의 전략이 제대로 마련돼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1998년 8월 대포동 1호 발사 때 미.일을 주축으로 한 대북 제재 움직임 때문에 당시 김대중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은 초반부터 시련을 겪어야 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움직임에 어느 선까지 보조를 맞춰야 할지 고민거리일 수 있다. 미국이나 일본과의 대북 정책 공조가 예전같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남북 간 민간교류와 경제협력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개발은 민간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이라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고 정부는 설명한다. 하지만 국내외적으로 대북 여론이 극도로 악화한 상황에서 두 사업이 탄력을 받기는 어렵다.

향후 남북 간 대화와 교류 협력 일정이 예정대로 이뤄질지도 지켜봐야 한다. 27일로 날짜까지 잡아놓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문제는 성사 여부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 북한은 추가 실무접촉에 응하지 않고 있다. 당장 19일부터 2주간 금강산에서는 남북한 각 200가족이 참여하는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린다. 또 개성공단 건설과 임진강 공동 수해방지 등을 위한 실무협의가 잇따라 열리고 다음달 11일부터는 부산에서 19차 남북장관급회담도 예정돼 있다. 외부의 압박이 거세지면 북한은 대화.교류의 문을 닫고 판 깨기로 들어갈 수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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