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상하이 정상회의와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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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상하이. 대한민국의 법통이라고 헌법에 명시된 임시정부의 탄생지. 이곳에서 상하이협력기구(이하 SCO.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제5차 정상회의가 열렸다. SCO는 냉전 종식 이후 요동치는 국경 문제의 평화적 처리 목적에서 1996년 개최된 '상하이-5' 회의(중국.러시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이 합류한 뒤 2001년 6월 15일 SCO는 국제기구로 정식 출범했다. 6개 회원국 외에 몽골이 2004년, 파키스탄.인도.이란이 2005년에 옵서버 자격을 획득했고 벨로루시와 스리랑카도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 SCO가 강한 흡인력으로 아시아 국가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가운데 개최된 이번 정상회담이 한국에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첫째 핵 문제. SCO 회원 가입을 희망하고 있는 이란의 핵 문제에 대해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 등 6개국이 제시한 포괄적 인센티브 협상안의 수용 여부가 긴박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란은 SCO를 국제적 발언대로 적극 활용하고 있고, SCO는 이 안건을 통해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북핵 현안과 관련, 특히 주의를 요하는 부분이다.

둘째, 회원국 확대와 반미 연대. 신규 회원국의 가입 규정이 어떻게 정비되느냐에 따라 여타 아시아 국가들의 SCO 가입이 가속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SCO 참여를 모색하는 한편 SCO를 '독재자 클럽'이라 격하하고 있다. 미군의 전진 배치에 대한 SCO의 입장 표명과 더불어 반미 성향이 강한 이란의 회원 가입 여부가 주목된다.

셋째, 경제 및 에너지 협력. 안보기구적 성격이 강했던 SCO는 급속히 경제협력기구로 발전하고 있다. 향후 SCO는 아시아 남쪽의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에 비견되는 아시아 북쪽의 지역기구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SCO는 서기동수(西氣東輸)라는 중국의 에너지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현재 SCO 회원국과 옵서버 국가들의 산유량은 전 세계의 약 23%를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와 카스피해의 에너지 자원과 관련해서도 SCO는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에너지 확보와 관련해 한국이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넷째, 문화 협력. 유라시아적 문화정체성의 재발견을 위한 SCO의 노력은 점차 국제적 표준으로 정착되고 있는 문화 다양성의 추구 노력에 의해 뒷받침될 전망이다. 이미 SCO의 문화외교는 다분히 유럽 지향적이었던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동향(東向)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것은 이들 국가가 한국과도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1885년 영국의 거문도 점거 사건의 배후로 작용했던 '거대한 게임(great game)'의 법칙이 미국과 SCO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체스게임'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부활하고 있다. SCO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제국적 세계질서에 맞서는 국제기구를 표방하고 있지만 역내 체첸.티베트, 그리고 SCO 로고의 지도에 일방적으로 그려진 대만 등에는 제국적 기제로 비치고 있다. SCO가 반테러리즘을 표방하고 있는 것은 미국과의 연대이기도 하지만, 역내 소수민족들의 자결의지에 대한 봉쇄이기도 하다. 이러한 SCO의 이중성 사이에서 한국은 복잡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이번 SCO 정상회의를 계기로 SCO가 비안보적 분야로 급속히 기능을 확대함에 따라 SCO에 대한 한국의 기존 정책은 일정한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과 유라시아 대륙을 잇고 있는 한반도를 둘러싼 거대한 바둑판의 흐름을 읽어내기 위한 스스로의 눈이 보다 절실해지고 있는 시점이다.

김명섭 연세대 교수·국제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