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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인 성악가"…'서편제' 소리꾼 김명곤의 변신

중앙일보

입력

7일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음악회 리허설을 하고 있는 김명곤 전 장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7일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음악회 리허설을 하고 있는 김명곤 전 장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화 ‘서편제’의 소리꾼, 김명곤(67)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신인 성악가”를 자처하고 나섰다. 바리톤 이지노 성악가에게 2016년부터 성악 지도를 받고 있는 그는 지난 7일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 신년음악회 무대에 올라 가곡 ‘그리운 금강산’과 오페라 아리아 ‘여자의 마음’ ‘별은 빛나건만’ 등을 불렀다. 거칠고 강한 판소리 대신 벨칸토 창법의 부드러운 음색이 무대를 채웠다. 7일 최종 리허설 직후 만난 그는 “‘신인’이라는 말이 너무 좋다. 기존에 쌓아왔던 틀을 깨고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굉장한 활력을 얻는다”면서  “호흡 훈련과 체력관리를 열심히 하면 90세까지도 성악가로 활동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서울대 독어교육과 3학년 때 판소리를 접한 이후 40여 년을 국악에 심취해 살았던 그가 서양의 창법에 눈을 돌리게 된 이유는 뭘까. 그는 “청소년 시절 레코드판을 틀어두고 따라 부르며 좋아했던 노래들을 다시 불러보고 싶어 성악 공부를 시작했다”고 답했다. 40년 전 그는 판소리 명창 박초월(1917∼1983)에게  소리를 배웠다. “당시 판소리의 기교를 몸으로 체득하는데만 5년 넘게 걸렸는데, 이번엔 2년 여에 걸쳐 판소리 목소리를 벨칸토 발성으로 바꿨다”면서 “내 내부에 판소리와 오페라와 공존하며 나를 행복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판소리ㆍ민요와 서양 성악의 세계를 접목시키는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우루왕’ 등 그가 만든 기존의 한국식 음악극을 오페라 형식으로 바꿔보겠다는 구상이다.

그의 성악 공부는 그가 평생을 강조했던 ‘광대’ 정신에도 부합하는 행보다. 그는 “‘넓을 광(廣)’ ‘큰 대(大)’의 ‘광대’ 뜻 그대로 큰 예술의 세계를 온몸으로 표현해내는 예인으로 살고 싶다. 혹자는 내게 소리꾼이냐, 배우냐, 연출가냐고 묻는데 그걸 다 하는 게 광대다. 광대는 줄을 타면서 재담도 하고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하고 북도 치고 춤도 춘다. 어느 틀에 나를 가두지 마라. 때론 연극 연출가이고, 때론 성악가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활동 무대에 제한을 두지 않는 그이지만, 하지 않겠다고 못박는 분야도 있다.  바로 정치와 제작이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시절 국립극장 극장장(2000∼2005)과 문화관광부 장관(2006∼2007)을 역임했던 그는 정치색이 분명한 예술인으로 꼽힌다. 이명박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 일체의 정치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를 하려면 적당히 남의 도움을 받고 갚으며 거래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걸 못한다”고 털어놨다. 공연 제작 역시 “돈을 끌어들일 능력이 없어 못하겠다”고 결론 내린 분야다. “정권이 바뀐 이후 ‘누가 나를 불러주겠나’ 싶어 공연 제작사를 차려 10년 동안 여섯 편의 연극ㆍ뮤지컬을 무대에 올렸다. 직접 제작을 하려니 기업 협찬도 받아야 하고 표도 팔아야 했는데 남한테 돈 얘기를 도저히 못 하겠더라”면서 “이제 제작자들이 나를 써주는 대로 배우로 혹은 연출로 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의 최근 활동은 연기에 집중돼 있다. 지난 한 해만 해도 영화  ‘신과함께-인과 연’, 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 ‘미스티’ 등에 출연했다. ‘영원한 광대’를 꿈꾸는 그의 목표는 “불후의 명작을 남기는 것”이다. 1975년 연극 배우로 데뷔한 이후 40여 년을 시대의 광대로 살아왔지만 “아직 ‘불후의 명작’은 없다”고 했다. 그가 남길 명작은 어떤 분야에서 나올까. 성악 역시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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