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제로 비화…여야시각과 대응책|난기류정국에 경찰사표 강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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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당소속 심완구 의원의 경찰간부에 대한 손찌검이 형사고발-경찰관집단사표제출-사표반려-문책 등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확산돼가고 있다.
정부는 이 사건을 경찰관의 사표반려와 심 의원에 대한 형사 처리 선에서 매듭지을 방침이지만 야당이 경찰의 집단행동을 「정치적 음모」라고 몰아세워 정치 문제화할 대세여서 좀처럼 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격적 인사 가능성>
정부관계자들은 경찰의 집단사표사태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경찰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자칫 그 같은 행동이 공직자사회의 기강해이로 확대 발전될 가능성을 고려해 조심스럽게 관계자들에 대한 문책문제를 검토 중.
고위당국자는 29일 『이번 경찰의 사표파동은 공무집행을 방해한 심완구 의원의 실정법위반과 공안공무원이 불만을 집단행동으로 보였다는 공직자의 기강문제로 나누어 봐야한다』고 전제, 『현재로서는 두 가지 쟁점이 맞물려있어 성급한 판단을 할 수 없다』고 정부의 기본입장을 설명.
청와대의 한 고위당국자는『우리는 경찰의 집단사표제출이 조직적인 선동이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불만이 자연 발생적으로 표출된 것으로 본다』고 밝히고 『그에 따라 내무장관이 유감표명을 했고 치안본부장이 이 단계에서 수습을 할 수 있다면 당장 문책을 검토할 단계는 아니다』고 강조.
이 당국자는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경찰의 사표제출은 정우영 총경이 심 의원으로부터 단순히 뺨을 맞았다는 그 이상의 복잡한 동기가 작용한 것 같다』며 『노사분규로 인해 가장 업무량이 과중한 경남도경간부와 경찰은 울산·마산·창원지역에 내려와 활동한 야당의원들로부터 적지 않은 모욕을 당했다는 피해의식도 있는 것 같다』고 분석.
그러나 다른 당국자는 『동기가 아무리 순수하고 울분에 의한 것이더라도 경찰의 집단행동을 묵과하는 것은 공직자의 기강확립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으며 만약 이번 일을 불문에 부치면 앞으로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아느냐』며 심 의원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밝혀지는 대로 양측을 모두 엄벌해야 한다는 주장.
그렇지만 경찰을 문책하더라도 이 시기만은 곤란하다는 것이 정부내의 중론인 것 같다. 우선 4월30일 여의도임금투쟁집회, 5월1일 메이데이 총파업을 앞두고 경찰을 문책했다간 시국치안이 엉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경찰의 집단사표가 더이상 확대되어 여론의 빈축을 사면 노태우 대통령으로서는 통치능력 면에서 부담을 안을 수 있어 전격적인 인사조치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사건」 축소에 부심>
민정당은 29일 당사자인 이한동내무장관과 조종석치안본부장을 불러 진상을 보고 받고 대책을 숙의했는데 심 의원사건과 경찰집단행동을 2개의 사안으로 분리, 심 의원사건을 끝까지 문제삼더라도 경찰의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든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27일 저녁 심 의원이 경찰관의 뺨을 때렸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만해도 박희태대변인은 『명백한 범법행위』라며 강경 비난하는 등 경찰 편에서 지원사격.
당직자들은 『심 의원의 행동은 국회의 권위와 의원의 품위를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공무수행중인 경찰관을 폭행했으므로 공무집행방해의 현행범』이라며 구속까지 주장했고 사법처리와는 별도로 민주당이 공개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심 의원은 국회차원에서 징계하는 것도 검토.
그런데 대야공세의 호재로만 생각했던 이 사건이 경찰관의 집단적인 사표제출 사태로 확산되자 다소 당황하는 분위기로 반전.
이종찬 사무총장은 『경찰들이 고생은 알아주지도 않고 몹쓸 사람으로만 몰아대니 얼마나 못 참았으면 그랬겠느냐』며 일단 이해해주려는 자세.
특히 최근 공권력 약화와 관련, 경찰들의 사기를 위해서도 공개적인 문제제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정순덕 경남도당위원장을 내려보내 외무활동으로 우선 진화작업에 주력.
그러나 강영훈 총리가 공무원의 집단행동은 어떠한 경우 건 엄단하겠다고 강조한지 이틀만에 이같은 사태가 발생해 정부의 권위에 도전한 꼴이 되어 난처한 표정들이다.
그동안 경찰 내에서는 6공화국의 민주화 진통 속에서 5공 때까지 누려온 「특권」이 무너진데 대한 불만 등이 팽배해온게 사실이나 정부·여당으로선 이 사건이 김용갑 전 총무처장관의 사표나 민병돈 전 육사교장의 졸업식사 파문 때처럼 민정당 정부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게 긴장하는 눈치.
한 당직자는 『정상적인 일은 아니다』며 착잡한 표정을 짓고 『일사불란한 명령체계를 가진 경찰이 집단사표를 낸 것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며 문책을 시사.
그러나 당내 일부에서는 문책 등의 조치가 사태를 확대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정치이슈로 발전시키기보다는 조용하게 끝내야 한다는 의견도 대두.

<정치권에 대한 도전>
야권은 이 사건을 심완구 의원의 폭행시비와 경찰간부의 집단사표로 분리, 「공권력 파업」의 형태를 띤 돌출사태에 초점을 두고 정치공세에 나서고 있다.
사건당사자인 민주당은 집단사표가 근로자에 대한 전자봉고문 은폐의도에서 출발했고 과잉확산의 배후에는 정치적 음모와 계산이 도사리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평민·공화당도 심 의원의 손찌검 시비에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집단사표 사태를 중시, 그 배후추적에 합세하고 있다.
야권이 긴장하는 것은 집단사표가 경찰의 권위방어를 넘어 정치권 전체에 대한 공권력 시위라는 성격을 갖고있다고 보고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널려있는 위기의 요소들에 자극을 주어 연쇄반응을 일으킬 경우 최악의 사태로 발전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민주당은 △심 의원의 손찌검사건이 경찰 수천 명이 불과 몇 시간만에 집단사표를 던질만한 성질도 아니며 △조사단이 배석한 가운데 지목된 고문경관혐의자와의 대질신문이 임박해 전자봉 고문진상이 가려질 순간에 폭행사건을 빌미로 경찰이 울고 싶은 때 뺨맞은 격으로 사건을 침소봉대해 고문자체를 은폐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었다고 보고있다.
5월의 위기현장에 위수령을 발동하기 위해 경찰력공백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노출시키고 있다는 의혹도 야당일각에선 일고 있다.
평민당도 이같은 흐름의 조짐을 차단하려는 자세다. 김대중 총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과잉반응』이라고 비판하고『집단행동을 막고 치안질서를 지키겠다는 경찰이 오히려 집단행동을 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려는 사람들에게 이용될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며 사태의 다른 방향으로의 전개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야권은 이같은 시각에서 사태의 책임과 배경을 추궁한다는 입장으로 정치쟁점화 시켜나가고 있다. 민주당 측은 집단사표는 국가 공무원법 66조에서 금지하고 있는 집단행동으로서 징계사유에 포함된다는 점을 강조, 문책을 요구할 방침이다.
또한 이 사태가 소몰이용 전자봉 고문여부를 밝히려는 근로자와 경찰관과의 대질신문 추진과정에서 발생한 만큼 고문사실규명을 별도로 추진하겠다는 자세다.
이미 근로자 진술·전자봉 사실확인 등을 마친 민주당은 고문여부 추적을 끝까지 해서 이 사태의 배후음모를 파헤치고 심 의원의 손찌검문제는 별개로 분리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평민당 측은 심 의원의 행동에 유감을 표시하고 있고 공화당도 『국회의 현장조사활동은 국민의 대표성을 띠고 있어 품위가 유지돼야함에도 불미스런 상황이 일어났다』며 민주당의 활동에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박보균·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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