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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5분만에 900명 대피… 대형참사 막은 차암초 대처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850여 명의 학생이 다니는 충남 천안 차암초등학교에서 발생한 화재사고에서 초동대응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부각됐다. 학교의 침착한 판단에다 학생들이 평소 익힌 대피훈련을 그대로 따르면서 단 한 건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3일 오전 9시32분께 충남 천안시 서북구 차암동의 차암초등학교 증축공사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 출동한 소방당국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뉴스1]

3일 오전 9시32분께 충남 천안시 서북구 차암동의 차암초등학교 증축공사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 출동한 소방당국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뉴스1]

천안 차암초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은 3일 오전 9시 31분쯤. 옥상에서 증축공사 현장을 지켜보던 유용관 행정실장은 불길과 연기가 치솟는 것을 보고 대형 화재를 직감했다.

화재 목격한 행정실장, 교장·교감에 알리고 119에 신고 #교감 "실제상황이다. 안전하고 신속하게 대피하라" 방송 #평소 지진·화재대피훈련 따라 5분만에 전원 무시히 대피

곧바로 교장실이 있는 1층으로 뛰어 내려온 유 실장은 정은영 교장과 김은숙 교감에게 화재 사실을 알렸다. 유 실장은 행정실로 달려가 119에 신고했다.

교무실에서 근무하던 김은숙 교감은 곧바로 각 교실과 유치원, 행정실 등에 연결된 마이크를 들고 “학교 증축 공사장에 불이 났습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데리고 후문으로 대피해 주세요”라고 안내했다. “이것은 실제상황입니다”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

3일 오전 충남 천안 차암초등학교에서 김은숙(57·사진 가운데) 교감이 학부모들에게 화재 당시 학생들의 대피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오전 충남 천안 차암초등학교에서 김은숙(57·사진 가운데) 교감이 학부모들에게 화재 당시 학생들의 대피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매년 3~4차례 교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지진이나 화재 발생을 가정한 대피훈련을 진행했지만, 자칫 ‘훈련’의 하나로 오인할 가능성을 우려한 조치였다.

유용관 행정실장 등 5명의 행정실 직원들은 비상벨을 누르고 5층까지 뛰어 올라가 각 교실을 돌면서 불이 난 사실을 알렸다. 교사들에게는 학생들을 신속하게 대피하도록 독려했다. 다행히 학교 내 다른 건물에 있는 유치원은 방학 중이라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평소 훈련 때와 마찬가지로 선생님을 따라 교실을 나와 후문으로 빠져나왔다. 교실에 있던 모든 학생이 후문을 나오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5분이 되지 않았다. 교사와 학생들은 인근 효성 해링턴플레이스아파트 지하에 있는 커뮤니티센터와 도서관 등으로 무사히 대피했다.

3일 오전 9시32분께 충남 천안시 서북구 차암동의 차암초등학교 증축공사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 출동한 소방당국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뉴스1]

3일 오전 9시32분께 충남 천안시 서북구 차암동의 차암초등학교 증축공사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 출동한 소방당국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뉴스1]

대피 과정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차암초에 근무하던 김민성(30)씨는 4층에 있던 장애학생인 건우(11)군을 안고 계단을 빠져나와 무사히 대피시켰다고 한다. 김씨는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을 듣고 무작정 건우를 안고 뛰었다”고 말했다.

교사와 학생 등 900여 명이 한꺼번에 대피하면서도 넘어지거나 부딪히는 등이 사고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불이 난 반대 방향인 후문으로 이동해 연기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학생들이 대피한 효성아파트의 관리사무소는 화재 소식을 듣고 도서관과 커뮤니티센터 등의 문을 열어 대피를 도왔다고 한다. 대피했던 학생들은 모두 귀가했다.

3일 오전 발생한 화재로 앙상하게 골조만 남은 충남 천안의 차암초등학교 증축건물. [연합뉴스]

3일 오전 발생한 화재로 앙상하게 골조만 남은 충남 천안의 차암초등학교 증축건물. [연합뉴스]

차암초 정은영 교장은 “아이들이 한 명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대피해 천만다행”이라며 “신속하게 대피를 유도한 교사들과 행정실 직원들에게 고마운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화재는 40여분 만인 오전 10시 12분쯤 완전히 진화됐다. 불이 나자 소방당국은 소방서 인력과 장비가 총동원되는 ‘대응 1단계’를 발령했다가 충남도 전체와 인근 시·도 소방서의 인력·장비를 동원하는 ‘대응 2단계’로 격상하는 등 진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교실 증축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용접 작업을 하던 중 불씨가 스티로폼에 옮겨붙으면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원인을 조사 중이다. 2015년 3월 개교한 차암초는 지난해 4월 교실 16실을 증축하기 위해 지상 5층 규모의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3일 오전 발생한 화재로 앙상하게 골조만 남은 충남 천안의 차암초등학교 증축건물. [사진 천안시]

3일 오전 발생한 화재로 앙상하게 골조만 남은 충남 천안의 차암초등학교 증축건물. [사진 천안시]

충남교육청은 이날 오전 천안교육지원청에 화재대책본부를 마련하고 화재 원인과 학생 배치 등에 관한 대책을 논의했다. 차암초는 9일로 예정된 겨울방학을 앞당겨 이날부터 조기 방학에 들어갔다.

김지철 충남도교육감은 “화재로 심리적 불안감이 있는 학생들은 별도의 치료를 받도록 지원하고 학부모들이 안심하도록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며 “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에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다.

천안=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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