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창목사 일본의 참회 시로 촉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오늘의 일본은 경제대국을 자랑하기에 앞서/정의의 일본, 도의의 일본을 건설해야 할지니/지난날 한국에 대한 죄악 깊이 깨닫고/아시아 나라들을 침략했던 죄악 뉘우쳐야/이웃나라와 세계가 새롭게 보리라/전쟁의 때묻지 않은「아키히토」신왕은/전쟁책임 은폐말고 피해국가에 잘못 고백하고/사죄의 순방을 하라/그리하여/새벽녘 붉게 타오르는/아시아 태평양의 새 전환기를 마련하라/「히로히토」의 장례날에 제언하노니/일본이여 대답하라」
지난 2월23일 일본동경신숙의 이에노히카리 (가노광) 강당에서 열린 소화국장 반대집회에서 한일합방 이전부터 8·15광복때까지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조목조목 밝히고 「히로히토」(유인) 일왕이 한마디 사과없이 숨진 것을 규탄하는 시를 낭독한 노목사가 있었다.
이날대회는 평화유족회 전국연합회·중국귀환연합회·와다츠미회·아시아여성회·정교분리회·일본기독교 교회협의회 야스쿠니 문제 특별위원회 등 제국주의 일본의 만행을 참회하는 일본인들의 모임이었다.
『일본이여 대답하라』는 제목의 장시를 소리 높여 낭독한 노목사는 74세의 박영창목사였다.
그는 일제때인 1939년3월 부친 박관준장로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의 부친은 제74회 제국의회 회의장에 잠입, 『한국내의 신사참배강요를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의 전단을 뿌렸다가 현장에서 체포돼 6년 옥고 끝에 평양감옥에서 숨졌고, 박목사는 함께 감옥에 있다가 출옥하여 중국으로망명했다.
『「히로히토」가 한국민을 탄압하고 기독교도들에게 수난을 안겨준 죄과에 대해 한마디 사과도 없이 숨지고 일본이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없이 그를 위한 성대한 국장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분노를 느꼈습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순교한 한국기독교인 1백인의 사진이 든 대형 포스터를 걸고 낭독한 『일본이여 대답하라』는 그의 시는 이날 대회 참석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특히 신왕 「아키히토」(명인)가 사죄하여야만 일본의 양심이 살아난다는 부분은 큰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현재 미국 LA 남가주 한인교회를 이끌고 있는 박목사는 82년 일본역사교과서 왜곡사건이 일어났을 때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스즈키」(영목)수상 등에게 『신사참배는 명백한 강제였다』는 내용의 항의서한과 경고문을 보냈고, 일본 3대신문인 아사히·마이니치·요미우리신문에서 「신사참배는 역시 강제」라는 표제로 보도되어 일본의 학자, 양심적인 지식인, 종교인들을 각성시켜 주었다.
박목사는 『일본이여 대답하라』는 시를 3월1일 동경교포교회에서도 낭독했다.
박목사는 이같은 일제비판 집념과 끈질긴 행적을 최근 일시귀국 중 털어놓으면서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일본의 한국에 대한 과거 죄과를 양심으로부터 진정코 사죄하도록 혼신의 힘을 기울이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과거의 구원보다는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어쩔 수 없이 또 다시 「가까운 이웃」으로 거리를 좁히고만 시대상황의 변화에 비추어 보면 박목사의 뜨거운 일제비판정열은 끝도 노고로 끝나고말지도 모르지만 대견스런 민족혼의 한줄기 분수로 주목해 볼 만하다 하겠다.<임재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