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탄 배 침몰해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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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사분규의 양상과 임금타결동향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일이 잘못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임금협상과정에서 근로자들이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파업이나 태업을 하는 일은 헌법에도 보장돼 있는 권리이니 만큼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집단시위를 벌이고 직장의 기물을 파손하는데 대해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같은 과격행위가 노사현장에 공권력을 불러들이고 그것이 다시 노학연계투쟁 등으로 이어져 분규의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도대체 그것이 누구에게 무슨 이익이 될 일인지 묻고 싶다.
지금 우리가 여야·조야·노사를 막론하고 언필칭 내세우는 최대의 가치지표가 「민주화」다. 민주화란 무엇인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설득과 승복을 하는 것이 민주화의 기본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격시위나 폭력이 난무한다는 것은 우리가 민주화와는 거리가 먼 엉뚱한 곳을 방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 큰 걱정은 근로자들의 임금인상 요구가 30%나 50%선을 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또 실제로 타결되는 선이 20%전후에 이른다는 점이다.
임금을 받고 일을 하는 근로자의 입장에서야 하는 일이 사무직이든, 공장근로자든, 신문기자든, 음식점 종업원이든 가릴 것 없이 많이 받을수록 좋은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자리보고 다리 뻗으라」는 속담처럼 거기에도 한계가 없을 수 없다. 자칫하면「제 닭 잡아먹기」식 결과를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임금을 지나치게 올리는 것이 내 주머니를 불리는 것 말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임금인상으로 인건비 지출이 늘어나면 경영자로서는 늘어난 부담을 보충할 방안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가장 손쉬운 방법이 제품가격을 올려받는 일이다. 제품가격을 올리면 그 부담은 결국 최종 소비자에게 전가되게 마련이다. 그 최종소비자는 누구인가. 근로자 자신을 포함한 국민들이다.
물론 그같은 물가상승효과가 당장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자기주머니에서 돈이 그정도 더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무작정 많이 받을수록 좋다는 생각은 단견일 수 밖에 없다.
지나친 임금인상의 영향이 물가파급효과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기업으로서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인력을 적게 쓰는 첨단설비로 시설을 개체하거나 자동화를 추진하게 된다.
최근 수출이 부진하고 경기지표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데도 전경련·산은·중소기업은행 등 주요기관이 조사한 산업실사지수나 설비투자동향이 계속 상승기조를 보이고 있는 것은 우리 산업계에 이미 그같은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을 반영한 것으로 보여진다.
해외로 공장을 옮기는 기업이 늘어나고 기술집약적인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가 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설비자동화로 인력수요가 줄고 공장을 해외로 옮기는 경우 나타날 결과는 고용감소와 실업사태다.
복지를 늘린다는 이유로 임금을 지나치게 올려 오히려 일자리를 줄인다면 자가당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뿐이 아니다. 지나친 임금상승으로 기업이 가격경쟁력을 상실하는 경우 더 두려운 사태가 벌어진다.
수출기업의 경우 외국 바이어들이 떨어져 나가 판로가 막히고 내수기업이라도 물건이 안팔리면 조업을 단축하거나 공장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대량실직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노사분규가 본격화된 87년, 88년 두햇동안 연13∼15%의 높은 임금상승에도 우리경제가 12%의 고속성장을 지속해왔기 때문에 임금상승의 어두운 측면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물론 우리기업들이 그동안 축적해 놓은 잠재력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그동안의 임금상승이 위험수위를 넘지 않았다는 설명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노사분규와 임금상승추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경우 과연 기업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경우는 다르지만 79년부터 산업고도화를 겨냥한 고임금정책을 썼던 싱가포르가 4년간 연평균 10%의 임금인상을 단행한 결과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 85년에 마이너스 1.8%, 86년에도 1.9%의 저성장에 그쳤던 사실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반면 연2∼5%의 임금상승에 그치고 있는 일본이 85년이래 90%가 넘는 엔화절상에도 불구하고 훌륭히 이를 극복, 「이자나기」 경기 (65∼70년) 라 불리는 호경기시대 이래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 자리에서 거듭 강조할 필요도 없이 근로자들의 임금인상요구는 당연한 것이다. 고도성장기에 소외되었던 몫을 받아내야겠다는데도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또 임금상승 그 자체가 경제적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근로자들의 소득증대는 내수소비를 늘려 통상마찰로 몰리는 기업들의 국내시장기반을 강화해 주고 고부가 가치산업으로의 구조고도화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싱가포르가 정책적으로 고임금정책을 추진했던 것도 그같은 효과를 기대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도가 지나쳐 근로자들의 직장을 뺏어가고 나라경제를 그르친다면 하나를 얻으려다 열을 잃는 결과밖에 더 되겠는가. 자칫 우리 모두가 타고 있는 배가 침몰할지도 모를 사태는 막아야 할 것이다.

<신성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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