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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소상공인 불복종 예고에도 주휴수당 밀어붙일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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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정부와 690만 소상공인 집단이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7일 출입기자단 송년회에서 “(주휴수당) 개정안은 당초 계획대로 31일 (국무회의에) 상정될 것”이라며 “노사 간 의견이 균형 있게 반영됐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즉각 반발했다. 이튿날 정부 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 철회와 주휴수당 폐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오늘 국무회의에서 개정안 재의결이 강행되면 주휴수당 불복종과 함께 지난 8월 광화문 집회에 이어 제2차 총궐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소상공인이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정면충돌하고 있는 양상이다.

최저임금 속도조절 말해 놓고 역주행 #690만 소상공인 벼랑 끝 내몰지 마라

문제는 심각하다. 무엇보다 정부 주장이 일방적이다. 홍 부총리는 “논란의 핵심이 된 법정 주휴수당은 1953년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이래 65년간 계속 지급돼 온 것으로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새로 생긴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시간을 65년 전으로 되돌려 보면 이 주장은 타당성이 많이 떨어진다. 이승만 정부는 한국전쟁 와중이던 1953년 5월 10일 근로기준법을 제정하면서 주휴수당을 포함시켰다. 그런데 그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당시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의 최빈국으로 쓸 만한 일자리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근로자들은 일자리만 있으면 휴일을 마다하고 일했다. 하지만 임금이 높을 리 없었다. 주 7일을 근로해도 생활이 어려웠던 시절이다. 일거리가 없는 게 그 시절의 고민이었지 휴일 근무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근로자들이 일요일 하루라도 쉬도록 유도하기 위해 주휴수당을 명문화한 것이다.

이런 연원을 고려하면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주 5일 근무가 일상화된 지금 주휴수당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게 소상공인들의 입장이다. 올해 16.4% 오른 최저임금이 내일부터 10.9% 추가 인상되는 상황에서 주휴수당까지 주라고 하니 ‘인건비 폭탄’이란 비명이 터져나온다. 지난달 소상공인연합회의 실태조사에서 “(주휴수당을) 모른다”는 응답이 20%에 이르고, “주휴수당을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65.3%에 달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주휴수당을 당장 없앨 수도 없다. 개별 기업의 사정에 따라 지급하고 있는 곳에선 주휴수당을 없애면 실질임금이 삭감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최저임금에 의무적으로 산입하면 혼란은 더 커진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는 법정 주휴수당이 없어 내일부터 최저시급 8350원을 받고, 법정 주휴수당을 1일씩 받는 기업 근로자는 최저시급보다 39.7% 높은 1만1661원을 받게 돼 임금 격차가 더 커진다고 분석했다. 소득분배 악화만 조장된다는 얘기다.

정부는 이 같은 파장과 혼란을 두루 고려해 주휴수당 문제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해놓고 오히려 주휴수당을 포함시켜선 소상공인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밀어붙인다고만 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