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물가 걱정 안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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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관민 모두가 노사분규, 통상마찰, 분배문제 등「발등의 불」에 급급하고 있는 사이 물가문제가 소홀히 다루어지고 뒷전에 밀리는 듯해 걱정이다.
올 연초부터 물가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지난 2월「89년 물가안정 종합대책」까지 내놓고 제법 물가안정을 위한 의지를 보이더니 요즈음은 이같은 의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정부의 정책이 반 물가정책이 아니고, 물가를 외면하는 정책으로 나가고 있는 듯한 인상마저 지울 수가 없다.
올해 우리 경제에 관해서는 그동안 낙관과 우려가 교체되어 왔으나 지금 돌아가는 대내 외 경제여건에서 볼 때 먹구름이 더욱 짙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재무부 장관, 한은 총재 등 정부측에서 경제전망을 점점 어두운 목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경제가 조정국면의 평년작 수준이 안되고, 곤두박질을 치고, 물가마저 널뛰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결코 비현실적 예측이라고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에서 물가걱정을 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은 요즈음 각종 요금, 가격인상 러시를 보면 알 수 있다. 1·4분기 물가가 비교적 안정적이긴 하지만 올해 물가를 너무 낙관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정부는 지수상으로 나타난 물가 동향을 들어 크게 걱정을 덜하는 모양이지만 실제가계가 겪는 물가고는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부는 공공요금인상은 최대한 억제하고 인상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5%이내로 인상폭을 억제하겠다는 것이 당초 방침이었으나 무엇이든지 올랐다하면 그 폭이 거의 두 자리 숫자다.
이미 중·고교 납입금이 평균 6·7%, 국민학교 육성회비가 17·9%, 시외버스 요금이 14·2%등 큰 폭으로 올랐으며 7월부터는 택시요금이 평균 15·1%, 의보 수가가 10%가량 오르기로 되어있다. 어디 그뿐인가. 독과점 품목인 맥주·소주도 들먹이고 있으며 개인 서비스요금이 물가를 주도하다시피 한다. 아파트 가격은 억제가 불가능해졌다.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나 정부의 나약한 물가억제 의지로 보나 올해 억제목표 도매물가 3%, 소비자 물가5%를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날 정부에서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대응해도 물가를 잡을까 말까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 심지어 공공요금까지 고삐가 풀렸다.
과거 물가 정책이 반드시 옳다고는 할 수 없으나 지금의 정책도 문제가 많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어정쩡한 것이 물가당국이고, 심지어 파업의 위협에 공공요금 대폭 인상억제 방침이 밀리고 만다. 정치적 판단에 경제 논리가 설득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동안 인상을 억제해온 때문에 각종 요금, 가격이 한꺼번에 오르고 있어 올해 물가가 위협적인데, 물가 복병은 사실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해외부문에서 물린 통화가 시중에 넘쳐 마땅한 투자 처를 못 찾고 있으며 노사분규 사태로 야기된 고임 현상과 일부 생필품의 생산차질에 따른 수급 불균형도 물가불안의 큰 요인이다.
재정 인플레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정당은 선거 때 공약한 것도 있고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곧 1조5천억∼2조3천억원 규모의 추경예산 편성을 서두르고 있다.
사회안정과 복지를 위해 추경 예산의 편성은 불가피하다 해도 물가측면에서 보면 추경예산은 최소의 규모로 짜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화 인플레 억제에도 힘에 부친데 재정에서 무절제하게 돈을 푸는 것은 물가문제를 그만큼 더 심화시키게 된다.
물가고가 야기되어 안정기반이 무너진다고 가정해 보자. 그 결과는 끔찍하다. 그런데도 물가 문제를 소홀히 다루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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