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정치 무력증」탈출 노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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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20 중평 연기」이후 표류해 왔던 정치권이 시국수습의 가닥이라도 잡으려고 부심하고 있다.
문익환 목사의 귀국을 계기로 공권력과 재야의 대치상황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이 언제까지나 뒷전으로 밀려나 있을 수만은 없지 않느냐는 여론이 비등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대 중공업 노사분규·문 목사 입북 파문을 거치면서 심한 무력증에 빠졌던 정치권이 더 이상「정치의 실종」을 방치할 수 없다는 자구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여야의 이같은 움직임은 14일의 동해시 재선거 이후 각급 대화 채널의 가동과 함께 정치권의 수습노력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4당 총무들은 임시국회 소집에 합의했고 각 당도 저마다 4당 대표 회담 등을 제창하면서 대화 분위기 조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미 정부 여당이 선 좌경처리라는 내부적 강경 방침을 그대로 밀고 갈 생각이어서 정부·여당 측이 구상하고 있는 4월 중순∼5월 초순까지의 강정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정치권은 그 뒤처리를 맡게될 가능성이 크다.
야당 측도 비록 정부측의 강경 수단을 비판하고는 있지만 문 목사 방북으로 노출된 재야의 급진성을 옹호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결코 적극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자칫 여권의 강경책이 정치권 전체를 긴장으로 몰아가는 상태가 되거나 또는 정치권이 사태의 권외에 밀려나 무기력을 드러내는 것도 곤란하다.
때문에 일단 여론의 동향 등을 봐가며 폭력적 집단 행동에는 강하게 자제를 촉구하면서 영수회담 등을 제안해 사태수습의 실마리를 남겨 두려하고 있다.
현재의 시국을「위기 상황」으로 진단하는데 여야의 인식이 모두 일치하고 있다. 6공 출범이래 최대의 혼란과 시련기라는 인식아래 4당 구조에 의한 수습능력이 한계에 부닥치고 있다는 위기감도 없지 않다.
김대중 평민·김영삼 민주당 총재는 다소 강도의 차이가 있으나 재야·운동권 및 노조의 접근자세에 문제점을 제기하고 확실한 입장선택을 하는 것도 야당, 나아가 정치권의 입지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김대중 총재의 온건노선 선택은 상당히 주목된다. 그는『일부 재야와 학생·근로자 층에서 과격한 폭력을 사용하고 북한을 지지하는 언동을 함으로써 중산층 등 국민들이 불안감을 갖고 있는 만큼 반성해야한다』면서 정국불안의 요인이 되고있는 과격 폭력 대응 쪽에 상당히 강도 높은 비판을 하고있다.
이에 앞서 김영삼 총재도「급진 재야와의 결별선언」으로까지 받아들일 정도로 강도 있는 비판에 나선바 있다.
두 김씨의 이같은 자세는 공권력과 장외세력에 의해 포위·압축돼 가고 있는 정치권의 「자기방어」의 절실함을 대변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시국불안의 핵심 요인의 하나인 문 목사 구속에 대한 평민당과 다른 3당간의 의견차이는 사태수습의 공동작업에 장애요인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구속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평민당도 문 목사 문제의 확대 재생산을 막는데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주목할 대목은 김대중 총재의 문 목사 반대의 논리가 재야의 접근시각과 간격이 있다는 점이다.
김 총재는『정부가 그의 방북을 위법행위로 보고 있는 만큼 수사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문 목사는 고령이고 증거인멸 염려가 없는 만큼 수사하되 구속하지 말아야할 것』이라고 인권차원에서 우선 출발하고 있어 재야의 본질적 문제 제기와는 거리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대화 재개의 움직임을 다그치고 있는 것은 5월 총 파업설을 전후한 5월 위기설 때문도 있다.
공권력과 재야가 물리력으로 맞부딪치는 장외 대결이 일어날 경우 정치권이 자칫 그 소용돌이에 빠져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까지 몰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들도 있다.
다음 5공 청산·광주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시한」에 다달았다는 측면이다. 5공·광주문제를 놔두고는 좌경·민주화·통일·노사문제 등을 따로 떼내 처리하기에 어려움이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고 있다.
이런 분석과 전망들은 자연스럽게 대화 재개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김대중 총재는 다음주초 야3당 총재, 이달 말 4당 영수회담을 제의하고 나섰다. 독자 노선에서 선회한 김영삼 총재도 대화개설에 원칙적으로 찬성하고 나서고 있어 실무회담을 거친 뒤 총재 회담을 추진할 생각이다. 다만 동해시의 공화 후보 매수사퇴와 공화당이 민주당 사무총장 등을 고소하는 사태가 갑자기 돌발해 대화 재개를 주춤하게 하고 있다.
민정당도 4당 공조체제의 필요성을 들고 나왔으나 다분히 전술적이다. 박준규 대표는 『위기상황 극복을 위해선 정부나 민정당의 힘만으로 부족한 만큼 초당적 협력태세가 절실하다』고 말하고 있다.
민정당의 이같은 자세는 문 목사 구속이후 전민련 등 재야단체, 각계의 좌경처리 등 광범한 좌경 대책이 진행될 경우 더욱 경색될 정국과 사회의 긴장을 정치권이 공동으로 풀고 이에 대한「동의」를 구함과 대 국민 설득의 속셈을 깔고 있다. 따라서 야당 측의 즉각적인 영수회담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고 4당3역간의 중진회담 등을 우선 제시하고 있다.
여야의 이같은 자세로 봐 곧 대화의 전면재개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나 정치권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해선 낙관과 비관적 전망이 교차하고 있다.
이미 여소야대의 4당 구조 정국의 시국수습 능력이 한계에 와 있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갖고 등장하고 있다. 노사·학생·통일문제를 수용할 수 있는 용량이 바닥이 드러난 만큼 국회를 열어봤자「정치의 왜소화」만 확인시켜 주는 꼴이 된다는 우려다. 야3당 공조도 과거처럼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균열이 커졌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6공이래 가장 큰 정치적 시련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에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쏠리고 있다. <박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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