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잡아도 잡아도…‘메뚜기’ 불법도박 사이트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615호 01면

SPECIAL REPORT 

“지금 스트리머(유튜브 실시간 진행자)가 고객과 ‘골드’를 주고받네.” 지난 20일 과천 정부종합청사의 한 구석진 사무실에서 컴퓨터 화면이 갑자기 시커멓게 변하자 국무총리실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 소속 현장감시원 두 명이 동시에 외쳤다. 이들은 스트리머가 진행하는 유튜브 온라인 ‘바둑이’ 게임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2012년부터 이어진 24시간 감시 작업이다. 스트리머의 판돈은 고객들이 대준다. 스트리머가 게임에서 이겨 골드를 따면 그 고객에게 판돈을 돌려준다. 스트리머가 잃으면 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것도 없다. 화면 한쪽에는 ‘컨텐츠 문의해주세요’라는 문구가 띄워져 있다. 일명 ‘현장상’에게 연락하면 투자할 판돈의 규모를 합의하고 입금 계좌를 알려준다는 뜻이다. 현장감시원이 카톡으로 연락했다. “어떻게 되나요.” 현장상이 즉각 답장을 보냈다. “100만 골드 22만원에 매입. 100만 골드 20만원에 매도. 입금 계좌는….” 현장감시원은 모든 상황을 저장하고 녹화했다. 불법도박을 입증할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실제 사감위의 이런 모니터링 작업을 통해 경찰은 지난해 12월 678억원 규모의 불법 스포츠 도박 운영자를 검거하기도 했다.

대포통장·폰만 있으면 쉽게 개설 #평균 3개월마다 사이트 주소 바꿔 #단속·거래정지·차단 권한 제각각 #“공무원을 특별사법경찰관으로” #포상금 올려 고발 이끌자 주장도

이런 불법 도박 사이트가 들끓으면서 불법시장 규모가 2015년 기준 83조8000억원에 이른다. 강원랜드·스포츠토토·로또·경마 등 합법도박 규모(2017년 기준 21조7000억원)의 4배다. 도박사이트로 안내하는 홍보글은 포털뿐 아니라 SNS에서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널려 있다. 이를 운영하는 조직은 사이트 주소를 평균 3개월마다 바꾼다. 빠르면 개설 한 달 만에 갈아치우기도 한다. 단속을 따돌리기 위해서다. 게임의 형태를 취한 유튜브 등 라이브 동영상 도박의 경우 게시자가 유튜브 사이트에 자동 저장된 게시물을 삭제하면 추적할 수 없다. 사감위 현장감시원들이 모든 상황을 저장하고 녹화하는 건 이런 이유다.

사감위는 모니터링을 통해 불법 도박 사이트를 찾아내고 사이트 폐쇄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요청한다. 하지만 즉각 폐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심의기간이 4주가량 걸린다. 빨라야 2주다. 그 사이에 해당 사이트는 실컷 돈을 번 뒤 다른 도메인으로 바뀐다. 방심위 3기 위원회가 지난해 6월 마무리되고 올 1월 4기가 출범할 때까지 7개월 공백 기간 동안 사이트 폐쇄는 이뤄지지 않았다. 사감위 관계자는 “방심위에서 불법 도박뿐만 아니라 다른 사안까지 모아서 심의에 들어간다”며 “방심위 심의 자체도 길고 인터넷망사업자(ISP)에게까지 폐쇄 요청을 해야 해 처리 소요 기간이 길어진다”고 말했다. 게다가 온라인 도박 사이트 가운데 https(hypertext transfer protocol secure socket) 웹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사이트는 사감위나 방심위도 어쩌지 못한다. 이 사이트를 차단할 기술을 확보하지 못해서다. 강신성 중독예방시민연대 사무총장은 “https 프로토콜에 대한 기술적 한계 때문에 실제 폐쇄 실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이트 차단이 한참 걸리는 것은 물론이고 단속 속도도 기어다니는 수준이다.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를 잡는 권한은 경찰청에, 불법 대포통장 거래정지 권한은 금융위원회에 각각 분산돼 있어서다.

이를 보다못한 도박피해자단체 등 45개 시민단체들은 사감위 소속 행정공무원에게 특별사법경찰관의 권한을 주자는 내용으로 법 개정 운동을 벌이고 있다. 2017년 ‘사법경찰관법’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 등의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으나 현재 계류 중이다.

불법 사이트 신고 포상금 예산은 현재 1억원이다. 지난해 신고자가 100여 명인 점을 감안하면 포상금은 평균 100만원에 불과하다. 내부고발을 이끌 인센티브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얘기다. 박상준 사감위 불법사행산업 감시신고센터장은 “불법 도박 사이트는 차단해도 도마뱀 꼬리처럼 계속 생겨난다”며 “도박 조직 자체를 잡아야 사이트도 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내부 고발자가 나올 수 있도록 포상금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홍준 기자, 김나윤 인턴기자 rimrim@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