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노동개혁, 밖으로의 글로벌화보다 국내 법·제도 글로벌화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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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 노력 의무를 충분히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분쟁해결 절차인 정부 간 협의 절차를 한국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EU는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촉구하는 압박을 강화해 왔다. EU는 문제 제기의 강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른 국가적 위상 실추 등도 초래될 수 있다.

EU, 한국정부에 공식협의 요청 속 #노사정 ILO핵심협약 비준 2차논의 #파업시 대체근로 등 조율 쉽잖아

#EU는 오늘 한·EU 무역 협정에 따라 지속 가능한 개발 약속 이행과 관련해 한국 정부에 공식 협의를 요청했다. 그 목적은 노동권의 문제에 있어 우호적이고 양측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기 위한 독자적인 대화 채널을 구축하는 데 있다.

17일 고용노동부와 EU 집행위원회가 각각 낸 보도자료 내용이다. 우리 정부 보도자료는 EU의 압박이 심해지기 전에 ILO 협약을 비준해야 한다는 뉘앙스다. EU 집행위원회는 대화를 통해 양측의 사정을 듣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자고 한다.

온도 차가 확연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ILO 핵심 협약 비준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자 국정과제다. 반면 EU는 정책을 수립할 때 당사자나 사회단체(산업단체, NGO, 기업, 지방자치단체 등)와의 협의와 자문, 설득에 각별히 신경 쓴다. 밀어붙이는 쪽과 소통을 우선시하는 두 정부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정부의 기조가 이처럼 명확한 가운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18일 ILO 협약 비준을 위한 2차 논의에 들어갔다. 1차 논의에선 노사가 합의를 못 했다. 2차 논의 전망도 밝지 않다. 결국 공익위원안이 어떻게 나오느냐가 관건이다. 1차 논의가 끝난 뒤엔 노동계의 요구사항을 거의 수용한 공익위원안이 나왔다. 정부의 의지대로 “공무원과 해고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ILO 협약을 이른 시일 내 비준하고, 노조 전임자도 늘려야 한다”는 요지였다. 2차 논의에선 ILO 협약 비준을 위한 국내 법·제도의 선진화 작업을 다룬다.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 직장 점거 금지, 부당노동행위 폐지 같은 것이다. 선진국은 모두 채택하고 있는 제도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밖으로의 글로벌화보다 내부 법·제도의 글로벌화가 시급하다”며 “국내 시스템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면 ILO 협약을 비준해도 큰 충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계도 비슷한 입장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기득권에 가까운 기존 제도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국내 제도는 ‘이대로’, 노조할 권리는 ‘국제화’하라는 주장인 셈이다. EU집행위원회는 17일 보도자료에서 “문 대통령이 ILO 핵심 협약을 비준하고 관련 입법을 추진하는 점에 지지를 보낸다”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남용우 상무는 “협약 비준을 위해 국내 법·제도를 글로벌 기준에 맞게 정비하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노동시장의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ILO 협약 비준의 관건은 결국 노동개혁인 셈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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