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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까진 인기척 있었다"…학생들 일산화탄소 중독 추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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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 끝낸 남학생 추정 10명 사상 강릉 펜션 현장. [사진 연합뉴스]

수능 끝낸 남학생 추정 10명 사상 강릉 펜션 현장. [사진 연합뉴스]

사고 펜션 모습. 박진호 기자

사고 펜션 모습. 박진호 기자

18일 오후 4시 강원도 강릉시 저동의 한 펜션(연면적 229.29㎡).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펜션은 ‘출입금지’라고 적힌 폴리스 라인만 쳐진 채 적막감이 감돌았다. 펜션 주변에는 경찰과 가스안전공사 관계자 수십명이 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잠시 뒤 국과수 관계자 10여명이 현장을 조사하기 위해 펜션 2층으로 올라갔다.

18일 강원도 강릉의 한 펜션에서 10명의 고교생 참사

하루 전인 17일 오후 3시 30분에 입실한 학생들은 이 펜션의 복층 구조로 된 201호에 머물렀다. 한 학생의 학부모가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2박 3일간 투숙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밤 7시 40분쯤 바비큐로 저녁 식사도 했다. 펜션 주인은 경찰 조사에서 “오늘(18일) 새벽 3시쯤에 위층에서 사람들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고 진술했다. 이때까지는 학생들에게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는 말이다.

사고가 난 펜션 내부 모습. [사진 뉴시스]

사고가 난 펜션 내부 모습. [사진 뉴시스]

그러나 이날 오후 1시 12분쯤 10명의 학생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것을 펜션 주인이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사고 학생들은 거품을 물고 구토 중인 채로 발견됐다는 것이 소방당국의 설명이다. 학생들은 거실과 방 여러 곳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해당 펜션에서 보일러와 연결된 연통 부분이 분리돼 있었던 것을 발견하고 이것이 사고 원인과 관련이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김진복 강릉경찰서장은 “일산화탄소 유출될 수 있는 시설은 가스보일러 등인데 국과수와 가스안전공사 등과 현재 정밀 감식을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사고 펜션에 설치된 대형 가스통. 박진호 기자

사고 펜션에 설치된 대형 가스통. 박진호 기자

해당 펜션은 객실 내 취사설비는 전기 인덕션뿐이다. 난방은 가스보일러로 호별로 난방하는 방식이다. 해당 보일러는 실내에 설치돼 있다. 객실 내부의 보일러실 한쪽 벽면에 설치된 연통을 통해 가스가 실외로 빠져나가는 구조다. 그러나 이 연통이 보일러와 분리돼 있었다면 보일러에서 나오는 가스가 실외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학생들이 머무는 방으로 들어와 일산화탄소에 중독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보일러에서 발생한 가스를 외부로 배출하는 연통 모습. 박진호 기자

보일러에서 발생한 가스를 외부로 배출하는 연통 모습. 박진호 기자

소방 관계자는 “사건 현장에서 일산화탄소 농도가 155ppm으로 높게 측정됐다”며 “일반적이 정상 수치는 20ppm 수준이다”고 말했다. 정상치의 8배 정도 되는 수준이다. 사건 현장에는 번개탄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학생들을 후송한 119 이송 요원도 “펜션의 보일러 연통이 밖으로 빠져 있는 구조인데 거기에서 가스가 실외로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학생들이) 중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진호 강릉소방서장은 사고 현장 브리핑에서 “자살도 타살도 아닌 사고사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펜션 내부 모습. [중앙 포토]

사고 펜션 내부 모습. [중앙 포토]

사고가 난 펜션은 2013년 10월 단독주택으로 지어졌다. 이후 게스트 하우스 등으로 이용되며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펜션 한쪽에는 붉은색 글씨로 ‘LPG’라고 적힌 대형 가스통이 보인다. 이 가스통은 각 객실에 연결된 보일러에 가스를 공급한다. 인근 주민은 “재작년쯤에 대형 가스통이 새로 설치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동안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고 올해 초부터 펜션으로 운영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건물이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불법 증·개축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펜션 주인은 중앙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지금은 정신이 없어서 통화하기 어렵다”며 “(원인은) 초동 단계라 말씀드릴 수 없다. 나중에 정식적인 루트로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서울 대성고 모습. 오종택 기자

서울 대성고 모습. 오종택 기자

사고 소식이 알려진 뒤 서울 대성고 정문 앞에 취재진이 몰려 있다 . 오종택 기자

사고 소식이 알려진 뒤 서울 대성고 정문 앞에 취재진이 몰려 있다 . 오종택 기자

사고 소식이 전해진 서울 은평구 소재의 대성고는 큰 슬픔에 잠겼다. 이날 오후 서울 은평구 소재의 대성고 정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고등학생들이나 교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 대성고 관계자는 “1·2학년은 오늘이 기말고사 마지막 날이어서 오전에 시험을 치르고 모두 하교했다”며 “교장, 교감 등 교사들도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 학교에는 당직교사 등 몇명만 남아있다”고 말했다. 수능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지난 17일(월요일)부터 체험학습 일정이 시작돼 학교에 등교하지 않고 있다.

오후 3시 28분쯤 이 학교 교사 한명이 차량을 타고 학교로 왔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경비에게 신분을 밝히고 교내로 들어갔다. 10분 뒤에는 교육청 관계자 2명이 굳은 표정으로 대성고로 들어갔다. 잠시 뒤에는 학교운영위원인 학부모 한명이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학교 인근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A씨는 “다들 내 새끼 같은 아이들인데 너무 안타깝다. 힘든 수능을 마치고 이제야 쉬려고 체험학습을 간 와중에 그런 일이 생겼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18일 오후 1시14분 고교생 10명이 단체 숙박 중 3명이 사망하고 7명은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된 강릉의 한 펜션에서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치고 현장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뉴스1]

18일 오후 1시14분 고교생 10명이 단체 숙박 중 3명이 사망하고 7명은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된 강릉의 한 펜션에서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치고 현장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뉴스1]

이번 사고는 수능시험을 마친 뒤 진행 된 체험학습 과정에서 발생했지만 동행교사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학교 관계자는 “개인 체험학습이기 때문에 학교는 승인만 해준다”며 “매우 가슴 아픈 일이 벌어졌고 학교도 진상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할 예정이지만, 학교가 이들의 체험학습을 허가한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학생 신청 → 학부모 동의 → 학교 승인’의 절차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강원=박진호·위성욱 기자, 김다영ㆍ김정연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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