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내친구] "유엔은 월드컵이 부럽다" 아난 총장 IHT 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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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유엔은 월드컵이 부럽다. 월드컵에서 우리는 목표가 성취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We see goals being reached)."

65억 지구촌의 축제 월드컵을 맞아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 신문에 특별기고를 했다. 올해 말 퇴임하는 그에게 올 대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가 태어난 가나가 처음으로 본선에 올랐기 때문이다. 아난 총장은 개인적 소회를 넘어 "월드컵이 부럽다"고 밝혔다. 월드컵이 국가.인종.종교를 막론하고 유일하게 세계화된 게임으로, 유엔보다 더 보편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FIFA 회원국(207개국)이 유엔 회원국(191개국)보다 많은 데서도 드러난다. 이 같은 이유 외에도 그는 월드컵이 부러운 이유를 여섯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월드컵에선 누구나 자국 팀을 알고 그들이 무엇을 해왔는지 안다. 누가 득점했는지, 경기가 어떻게 된 건지, 페널티킥을 선방한 이가 누군지 아는 것이다. 아난 총장은 이에 비춰 "국가 간에도 그런 식의 경쟁이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권을 논할 때나 영아사망률 낮추기 등에서 서로 이기려고 노력하면 좋겠다.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서로 업적을 자랑하고, 성취를 평가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둘째로 부러운 것은 "월드컵을 통해 발현되는 열정"이다. 파라과이가 골을 넣으면 팬들은 일제히 그 얘기를 한다. 일본인들은 호주전을 앞두고 전략을 말한다. 아난 총장은 "말수 없던 십대들이 갑자기 달변가가 돼 분석력을 발휘하는 현상"에 경의를 표하며 "인간계발지수를 높이는 데 어느 나라가 더 앞장서는지, 온실가스 감소와 에이즈 예방을 위해 누가 더 노력하는지"도 이 같은 대화의 주제가 되길 원했다.

셋째, 월드컵에선 모든 나라가 동등한 조건 하에 경쟁한다. 재능과 협동만이 중요하다. "세계라는 경기장에서도 더 많은 것이 동등해지길 빈다. 장벽.관세 없이 자유롭고 공정한 거래가 이뤄지고 각국이 제각기 강점을 펼칠 진짜 기회를 가졌으면"하는 부러움이다.

넷째, 아난 총장은 "월드컵이 다른 민족.국가 간 교류의 이점을 보여준다"는 데 주목했다. 많은 대표팀이 다른 나라 감독을 맞이하면서 생각과 플레이의 새 길을 연다. 선수들은 다른 나라 클럽에서 뛰면서 새 활력소가 된다. 모국에 돌아가선 배운 것을 십분 풀어놓는다. 아난 총장은 이러한 이주(migration)가 삼자 간 이익(triple wins.이주자 자신, 태어난 나라, 그들을 받아들인 사회 모두에 이익)을 가져오는 것으로 봤다.

다섯째, 월드컵에서 뛰는 것은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다준다. 아난 총장은 특히 가나를 들어 "본선에 첫 출전하는 나라에서 이는 명예훈장"이라고 했다. 수십 년간 반목의 세월을 보낸 앙골라나 갈등으로 곯은 코트디부아르에 월드컵은 국가적 단결 이상의 의미라는 것.

마지막으로 그는 골(goal)의 의미에 주목했다. "각 팀이 넣는 골뿐 아니라 월드컵에는 목표(goal)가 있다 - 함께 있는 것, 가족.나라.민족의 일원이 되는 것, 공통된 인간성을 축복하는 것"이다. 아난 총장은 "이탈리아전 때 가나를 응원하면서도 이를 잊지 않겠다"고 하면서 "장담은 못 한다"는 위트로 글을 마쳤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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