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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일반고 중복 지원 금지, 위헌일까…헌재 공개변론

중앙일보

입력

“자사고 학교장이라고 해도 사실상 입학식 때 선서 받을 권한밖에 없습니다. 이미 선발방식을 정해놔서 선발권을 제한해놓고 중복 지원까지 금지하는 건 자사고를 궤멸시키겠다는 겁니다.”

‘수학의 정석’의 저자로 알려진 홍성대 전주 상산고 이사장이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헌법소원 청구인 자격으로 나와 이렇게 말했다. 14일 오후 헌재 대심판정에서 자율형사립고와 일반고를 중복해서 지원하지 못하도록 한 시행령의 위헌 여부를 놓고 공개변론이 열렸다.

홍성대 상산학원(상산고) 이사장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자립형사립고·일반고 동시선발' 관련 헌법소원심판 사건의 공개변론을 위해 참석했다. [뉴스1]

홍성대 상산학원(상산고) 이사장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자립형사립고·일반고 동시선발' 관련 헌법소원심판 사건의 공개변론을 위해 참석했다. [뉴스1]

고등학교는 통상 입시 일정을 기준으로 8월~11월 신입생을 선발하는 과학고·외국어고·국제고·자사고 등 '전기고'와 12월에 뽑는 일반고 등 '후기고'로 나뉘어왔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쳐 올해부터 자사고·외고·국제고가 후기에 일반고와 신입생을 같이 뽑고, 이들 학교 지원자는 일반고에 동시 지원하지 못하게 했다.
자사고와 외고 등이 우수 학생을 미리 선발함으로써 고교 서열화를 심화시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상산고, 민족사관고 등 전국 단위 자사고들이 지난 2월 교육부가 수정한 시행령이 학교선택권과 평등권 등 헌법적 가치를 침해했다고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일반고와 선발 시기를 동일하게 조정하고 중복 지원을 불가하게 한 건 사립학교 운영 자유뿐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까지 침해하는 것”이라는 취지에서다. 청구인들은 과학고, 영재학교 등은 전기고로 유지하면서 자사고를 후기학교로 변경한 것에 대해서 “평등권을 침해한 자사고에 대한 차별”이라고도 주장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자립형사립고·일반고 동시선발' 관련 헌법소원심판 사건의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뉴스1]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자립형사립고·일반고 동시선발' 관련 헌법소원심판 사건의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뉴스1]

청구인 측 대리인인 김용균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의 학생선발 경쟁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자사고가 입시경쟁을 유발하는 원인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자사고에 우수학생이 많이 지원하는 건 전기모집 때문이 아니라 자사고가 양질의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라며 “교육부는 자사고의 입학 정원 미달을 유발해 궤멸시키려는 저의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홍성대 이사장은 조용호 헌법재판관이 “자사고의 전기 선발과 일반고 중복 지원이 모두 금지되면 자사고는 어떤 불이익을 입느냐”고 묻자 “궤멸될 게 분명하다”며 “교육자로서 어떤 현실에서도 필요한 교육을 해야 하지만 그냥 학교 문을 닫고 싶은 심정이다”고 토로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헌재에 의견서를 제출해 “자사고·일반고 동시 선발로 자사고 불합격자가 일반고 배정상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은 그동안 누려온 특혜가 제거된 것에 불과하다”며 “자사고는 우선선발이라는 특혜를 누리면서도 입시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우수학생을 선점해 고교서열화를 초래했다”고 반박했다.

교육부 측 대리인인 박성철 변호사(법무법인 지평)는 “특혜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만 제한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데 자사고가 다양성 교육이라는 기존 설립 목적과 달리 입시 위주로 변질됐다”며 “후기 일반고를 2류, 3류처럼 전락시키면서 자사고가 누려온 특혜를 빼앗는다고 해서 학교장이 학생을 선발할 권한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1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자사고 학교법인 등이 청구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80조 1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사건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자사고 학교법인 등이 청구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80조 1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사건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청구인 측은 민족사관고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했던 윤정일 한국교육행정학회 이사장을 참고인으로 불렀다. 윤 이사장은 “외국은 대부분 공립학교에만 평준화를 적용하고 사립학교는 엘리트 교육 등을 담당하면서 입시 시점 등을 자율에 맡긴다”고 말했다. 그는 “민사고는 석사학위 이상의 교사만을 채용하고 학생들에게는 영어사용을 의무화하고 소수 정예로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는데 이는 자사고이기 때문에 가능한 교육”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부 측 참고인으로 나온 주석훈 서울 미림여고 교장은 윤 이사장이 든 민사고의 예시를 언급했다. 주 교장은 “고등학생이 어떻게 그런 교육과정을 따라갈 수 있는지 의문이다”라며 “면학 분위기를 조성할 상위권 학생들이 모두 빠져 현재 일반고의 교실 분위기와 학업 수준은 참담하다”고 말했다.

이날 4시간 넘게 이어진 공개변론에서 재판관이 교육부의 답변에 대해 지적하는 일도 있었다.
위헌 여부를 가릴 쟁점 중 하나는 교육부가 신뢰보호의 원칙을 위배했는지 여부다. 청구인 측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전기 모집을 조건으로 해 자사고의 인가를 내줬는데 정부가 갑자기 이를 바꿈으로써 신뢰를 무너트렸다고 주장했다. 유은혜 장관은 서면을 통해 “해방 이후 우리나라 교육환경은 급변했기 때문에 학생 선발의 시기를 유지할 것이라는 신뢰는 크지 않다”고 반박했지만 조용호 재판관은 “교육부가 할 만한 답변은 아닌 거 같다”고 지적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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