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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손 깨무는 아이, 무섭게 혼내라고 조언했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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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서영지의 엄마라서, 아이라서(11)

지난가을, 아이와 집 앞에 떨어진 낙엽을 주워 집에서 미술놀이를 했다. 페트병에 낙엽을 붙이기만 했을 뿐인데 예쁜 낙엽 아가씨가 됐다. 쉽고 예뻐서 주변 엄마들한테 만들어보라고 권유했다. 이런 놀이를 알려주는 건 마음 편히 부담 없이 했는데 아이 행동에 대해서는 조언한 뒤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사진 서영지]

지난가을, 아이와 집 앞에 떨어진 낙엽을 주워 집에서 미술놀이를 했다. 페트병에 낙엽을 붙이기만 했을 뿐인데 예쁜 낙엽 아가씨가 됐다. 쉽고 예뻐서 주변 엄마들한테 만들어보라고 권유했다. 이런 놀이를 알려주는 건 마음 편히 부담 없이 했는데 아이 행동에 대해서는 조언한 뒤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사진 서영지]

17개월 된 아이가 자꾸 엄마나 시터 이모의 손을 깨문다는 고민을 한 선배가 털어놓았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는데 나도 잘 모르는 내용이라 처음 몇 번은 잘 모르겠다며 얼버무렸다. 몇 번 같은 고민으로 얘기를 나눴을 때, 내 딴에는 고민을 함께하고 좋은 방법을 생각해보고자 예전에 들었던 조언을 끄집어냈다.

언젠가 친밀하게 지내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동생이 내게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언니, 나는 절대 못 그럴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좀 걱정도 돼서. 어떻게 아이가 고집부리고 화나게 하는데 화를 내지 않고 계속 조곤조곤 말로 설명을 해? 언니 정신건강을 위해서 화가 나면 화도 내고 안 되는 건 눈물 쏙 뺄 정도로 안 된다고 무섭게 알려줘야 하는 거 아냐? 누가 그러던데 안전에 관한 거나, 해서는 안 되는 건 무섭고 엄격하게 혼내야 한대.”

그때 내 대답은 대충 이랬다.
“나도 사람인데 소리치거나 화내기도 하지. 내가 화가 안 났는데 엄한 척하는 게 더 어렵더라고. 아이가 지금 당장 바로 알아듣지는 못하더라도 계속 설명하다 보면 언젠간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해. 무엇보다 이 정도 상황에서는 아직 화나지 않고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 괜히 엄한 척하는 것보다는 설명하는 게 편해.”

내가 화나는데도 참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대로가 더 편해서 그런 거라고 설명하긴 했지만, 엄마가 권위적이고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나, 내가 좀 더 엄격하게 아이를 다스려야 하는 건가 생각이 많아지긴 했던 것 같다.

이때 대화가 생각나 선배에게 말했다.
“어설프게 혼내면 장난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눈물이 쏙 빠지게, 무는 건 절대 안 된다고 무섭게 혼내서 알려줘야 하는 건 어떨까요? 아이 손을 적당히 깨물어서 깨물면 아프다고 알려주는 거예요. 그래야 물면 아프다는 걸 알지 않을까요?”

선배는 제대로 알려줘야겠다고 얘기했던 것 같다. 며칠 뒤 선배는 아이가 또 이모를 물었다며 주변 전문가에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봐달라고 했다. 나는 한 아동심리 전문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다. 전문가의 조언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차이가 컸다.

선배는 아이가 15개월이 되어갈 때 복직했다. 전문가는 아이가 엄마와 떨어진 데에서 분리불안을 느끼고 애정이 부족하다고 느껴 깨무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사진 pixabay]

선배는 아이가 15개월이 되어갈 때 복직했다. 전문가는 아이가 엄마와 떨어진 데에서 분리불안을 느끼고 애정이 부족하다고 느껴 깨무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사진 pixabay]

그 선배는 아이가 15개월이 되어갈 때 복직했다. 전문가는 아이가 엄마와 떨어진 데에서 분리불안을 느끼고 애정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깨무는 월령이 아닌데 이상 행동이 나타나는 건 뭔가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는 건데, 애정을 쏟고 ‘사랑 탱크’를 채워줘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또 문다면 “흑흑…. 무니까 너무 아파”라고 우는 시늉을 하며 너무 아프다는 표현을 해 공감을 끌어내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물어서 아픈 걸 알려주는 방법은 아니라고 했다. 그럴 경우 ‘저 사람은 날 공격하는 사람이니 아까 내가 문 행동은 잘한 일이야’라며 정당성을 얻는다는 설명이었다.

전문가의 제대로 된 조언을 듣고 나니 내가 얼마나 경솔한 조언을 했는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평소에 아는 척을 하는 편은 아니었다. 아닌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아는 것도 잘 모른다고 말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육아 선배랍시고 ‘아는 척’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앞으로 잘 모를 때는 함부로 말하지 말고 더욱 조심해야겠다고 깊게 반성했다.

전문가에게 물었습니다

도움말: 방성규 한국놀이치료협회장(상담심리학 박사)

구강기 때와 달리 3세 이후의 깨물기는 반대 의사와 권리주장의 수단으로 표현된다. 이 아이들이 깨물 경우 양육자는 반드시 아이를 훈육해야 한다. [사진 pakutaso.com]

구강기 때와 달리 3세 이후의 깨물기는 반대 의사와 권리주장의 수단으로 표현된다. 이 아이들이 깨물 경우 양육자는 반드시 아이를 훈육해야 한다. [사진 pakutaso.com]

17개월 아이가 무는 건 왜 그러는 걸까요? 또 그럴 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구강기 때 아이의 빨기와 깨물기는 아이의 정서적 만족에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흔히 구강기는 생후 24개월까지로 보는데 생후 6개월 정도 지나면 자신의 잇몸에 무엇인가 닿으면 자동으로 물 수 있고 12개월 정도가 지나면 씹기 기능이 정교화하기 시작합니다.

12개월 이후로 아이는 깨물기로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이때의 깨물기는 양육자에게 불쾌나 불만족을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떤 양육자는 아이가 깨물 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아이의 입을 살짝 치거나 심지어 아이를 깨무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의 공격성만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어른들이 아이가 귀엽다고 볼이나 손 등을 깨무는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아이에게 깨무는 행위가 자칫 관심 끌기나 우호적인 표현으로 잘못 인식되어 아이가 모방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또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구강기 때와 달리 3세 이후의 깨물기는 “싫어”라는 반대 의사와 “이거 내 거야”라는 권리주장의 수단으로 표현됩니다. 이 연령대의 아이가 양육자나 친구를 깨물 경우, 양육자는 아이를 반드시 훈육해야 합니다. 엄마가 적절히 훈육하지 않으면 아이는 깨물기처럼 폭력적인 방식이 자신의 권리주장이나 문제 해결에 효과가 있다고 잘못 인식하게 되어 깨물기가 나쁜 버릇이 될 수 있습니다.

일단 아이가 사람을 깨문다면 엄마는 아이가 깨무는 행동을 보일 때 즉시 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단호한 말투로 “안 돼!”라고 표현을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엄마는 “엄마하고 놀고 싶구나” “엄마가 못 들은 줄 알았구나” “엄마가 안 주는 줄 알았구나”와 같이 미숙한 행동 뒤에 숨은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만약 첫 번째 교정적 개입만 하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지 않으면 내향적인 아이는 좌절감으로 다른 의사 표현이 위축될 수 있고 반대로 외향적인 아이는 공격성이 더 커져 깨물기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깨무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배가 고프거나 졸려서 짜증이나 화가 나도 아이는 엄마나 주변 사람을 깨물 수 있습니다. 깨물기는 아이가 엄마에게 자신의 불만족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마는 아이가 언제 깨무는지, 깨무는 행동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를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가 말로 표현하는 것이 늦거나 어려워서 깨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아이 연령에 맞는 언어발달이 이뤄지고 있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엄하고 무섭게, 눈물 쏙 빼게 혼내는 방식이 필요할 때가 있을까요?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드러누워 떼를 쓴다면요?
엄한 훈육은 아이가 신체적 위험에 처할 경우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경우 당연히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손을 깨무는 정도가 아니라 손가락으로 양육자나 다른 사람의 눈을 찌르거나 차도로 뛰어든다거나 하는 경우 엄하고 단호하게 금해야 합니다. 공연장, 식당같이 실내 공간에서 심하게 떼를 쓰고 소란을 피울 경우에도 단호하게 개입해야 하지만 길거리는 실내보다는 좀 여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공공장소에서 아이를 훈육할 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 나머지 아이를 감정적으로 과도하게 훈육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이러한 훈육은 양육자의 수치심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습니다. 수치심에 사로잡혀 한 훈육은 매우 파괴적이어서 삼가야 합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렇게 작은 일 하나하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를 수 있습니다. 전문가가 주변에 없다면 물어보기도 어려워 주변 육아 선배한테 묻다 보니 어설픈 조언을 듣기도 하는데요.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아이의 양육은 사실 정답이 없습니다. 워낙 아이의 기질에 따라 개인차가 크기 때문입니다. 자문해서 적용할 때 일단 이게 유일한 해답처럼 적용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언을 정답처럼 적용하는 건 피하되 유연하게 적용해보고 효과가 있으면 적용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조언을 받아 적용해보는 사고와 행동의 유연성이 양육자에게 필요합니다. 

※ 사연을 받습니다

엄마로, 아내로, 딸로, 며느리로 아이를 키우면서 닥쳤던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냈거나 아이의 마음을 잘 다독여준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아이와 관련한 일이라면 어떤 주제라도 좋습니다. 그 이후로 더 힘차게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 그 사건을 겪으며 느낀 생각과 깨달음, 그로 인한 삶의 변화 등을 공유해주세요. 같은 상황을 겪는 누군가에게는 선배 엄마의 팁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서영지 기자의 이메일(vivian@joongang.co.kr)로 사연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보내실 때는 이름과 연락처를 꼭 알려주세요. 사진과 사진 설명을 함께 보내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서영지 기자 vivi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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