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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북핵·사우디 외교 실패···"폼페이오 분노 커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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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 4일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이날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서 민족국가 역할의 복원을 주제로 유엔·나토·I유럽연합·IMF·세계은행 등 다자 국제기구들이 실패를 비판했지만 동맹국들의 반발만 샀다. [AP=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 4일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이날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서 민족국가 역할의 복원을 주제로 유엔·나토·I유럽연합·IMF·세계은행 등 다자 국제기구들이 실패를 비판했지만 동맹국들의 반발만 샀다. [AP=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시련의 겨울을 맞고 있다. 북핵은 진전될 기미를 보이긴 커녕 협상조차 열리지 않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외교 실패에 대한 비난 여론만 비등하면서다. 블룸버그통신은 국무부 내무 논의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폼페이오 장관은 공식적 입장과 달리 사적으론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에 아무 진전이 없는 데 분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 "폼페이오 사적으론 훨씬 비관적" #WP "폼페이오 7개월 '스웨거 외교' 실패, #의회·동맹·언론·국무부, 북한까지 외면"

폼페이오 장관도 지난 7일 고향 캔자스주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북한을 비핵화하는 힘든 과업이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6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이 약속한 비핵화를 이행하게 할 방법을 모색하는 건 상당한 경험이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블룸버그는 하지만 “폼페이오는 공식적으로 ‘진전이 만들어지고 있고 북한과 실질적 대화를 하고 있다’며 낙관적이지만 사적으론 훨씬 비관적이며, 분노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자신의 파트너인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지난달 8일 고위급 회담을 취소한 뒤 날짜를 주지 않는 건 물론 스티브 비건 대북 특별대표와 실무협상 초청엔 석달째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신은 “이는 북핵 문제가 조기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수준도 낮추게 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2021년 1월)내 비핵화의 상당 부분을 완수할 것이던 입장에서 “인위적 시한을 두지 않겠다”고 물러섰기 때문이다.

대북 협상 책임자인 폼페이오의 분노는 2차 북ㆍ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시간 끌기 협상 전술에 대한 것이며, 더 근본적으론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트럼프와 직접 거래하길 원해 완강히 버티고 있는 것”이라며 “내가 얘기한 모든 사람은 뭔가 합의에 가까워진 게 아니라 정말 교착상태에 빠졌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비핀 나랑 MIT대 교수는 트윗에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 참모들을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며 “폼페이오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과 게임에 점점 질리고 있는 반면 트럼프만 비핵화가 속임수임을 잘 알면서도 개의치 않는다”고 지적했다.

폼페이오 재임 7개월 과거 미국의 영광을 복원하겠다는 ‘스웨거(swagger, 으스대기) 외교’ 성과에 대한 비판 여론도 커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9일 칼럼을 통해 “폼페이오가 실패를 향해 가고 있다”며 “의회와 주요 동맹국, 언론과 국무부 직원은 물론 심지어 북한으로부터도 외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칼럼은 “북한 통치자도 폼페이오와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게 분명해 보인다”며 “제재 완화를 양보하지 않는 강경한 태도 때문일 수도 있지만, 독재자도 으스대기엔 정나미가 뚝 떨어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우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언론인 암살 개입 사건도 폼페이오에게 직접 타격을 주고 있다. 지난달 28일 상원에서 열린 트럼프 행정부의 사우디의 예멘 무력 개입 지원 행위를 중단하라는 ‘예멘 종전 결의안’이 63대 37로 가결됐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보고서와 달리 폼페이오 장관이 “빈 살만 왕세자가 언론인 자말카쇼끄지 암살에 직접 개입한 증거가 없다”고 증언한 뒤 열린 표결에서 여당 의원들까지 트럼프-사우디 밀월을 규탄하는 데 합세한 것이다.

국무부 인원ㆍ예산을 감축에 열을 올렸던 전임 렉스 틸러슨체제와 비교해 국무부 직원들의 내부 사기도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틸러슨은 주요 외교관, 고위직은 비워둔 채 자신이 데려온 소수 측근에만 의존한다는 내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폼페이오 체제에서 7개월을 지냈지만 6명의 차관 중 4자리를 공석으로 비워두고, 이집트ㆍ요르단ㆍ파키스탄 및 터키 등 주요 대사직도 공석이다. 오히려 카쇼끄지 암살 논란 와중에 사우디 대사를 지명해 쓸데없는 호의를 베풀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북한과 이란, 중동평화 등 핵심 임무를 담당하는 특사직은 대부분 국무부 밖에서 공화당 관련 인사들에서 충원한 것도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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