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특감반 비위, 진상을 알아야 책임 가릴 것 아닌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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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특감반) 비위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공직기강 관리 체계를 강화하고 특감반 개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는 것이다.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어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에게 관련 보고를 받은 뒤 이같이 지시했다. 야당을 중심으로 해임 요구가 제기된 조 수석을 재신임한 셈이다.

“감찰 사안” 언급 회피 속 눈덩이처럼 커져만 가는 의혹 #국민이 옳게 평가하려면 청와대가 직접 조사 나서야

문 대통령은 오히려 기존 라인에 후속 대응을 맡김으로써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특히 “대검 감찰본부의 조사 결과가 나오면 이번 사건의 성격에 대해 국민이 올바르게 평가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민이 올바르게 평가하려면 대검 감찰에만 맡길 게 아니라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나서 사건의 진상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것은 법원이나 검찰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가장 답답한 건 특감반 비위를 둘러싼 의혹이 종잡을 수 없이 커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28일 첫 보도가 나온 뒤 지금까지 확인된 내용은 특감반 소속 수사관이 경찰청을 찾아가 지인의 뇌물 사건을 캐물었다는 것 정도다. 청와대는 “감찰 사안으로 확인해 드릴 수 없다”(조 수석)는 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특감반원들이 근무시간에 골프를 쳤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확인되지 않은 사실”(김의겸 대변인)이란 언급만 나왔다. 골프를 주말에 쳤다, 연차를 사용했다 등 설이 분분하다. 해당 수사관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셀프 인사 청탁’을 했다는 것 역시 미확인 의혹으로 남아 있다. 한두 건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후 처리 과정에 있다. 청와대가 법무부·검찰에 수사관 비위 사실을 정식 통보한 것은 당사자를 복귀시키고 보름 후인 지난달 29일이었다. 청와대가 관련 해명을 내놓기 시작했을 때였다. 대검은 다음 날인 30일에야 파견에서 복귀한 수사관들에 대해 감찰에 착수했다. 늑장 통보-감찰 착수의 배경은 무엇일까. 청와대의 답변은 “조금도 법령에 어긋나지 않게 비위 사실을 통보하고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특감반원 ‘전원 교체’ 조치 역시 비위 사실이 확실하게 가려진 뒤 취해졌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간 문재인 정부가 강조해 온 소통의 정신은 평상시가 아니라 위기 때 빛을 발하는 것이다. 진정한 소통은 정확한 상황 인식을 공유하는 데서 시작된다. 내부의 문제를 드러내고 수술해야 하는 상황일수록 사실관계를 가감 없이 공개해야 하는 이유다. 고통스럽더라도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청와대는 지금이라도 특감반 비위 의혹은 물론, 처리 과정 전반에 대해 철저한 조사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국민 앞에 있는 그대로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민정수석에게 책임이 있는지 없는지, 얼마나 책임이 있는지 국민이 판가름할 수 있다. 또 그래야만 청와대가 제대로 판단했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