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세력 목소리 드높다|소 인민대의원 선거|옐친·사하로프 폭발적 인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오는 26일 실시될 소련인민대의원 선거를 앞두고 개혁파들의 당·정부비판이 거리낌없이 공개되는 등 열기를 띠어가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정치개혁 제1단계의 마무리인 동시에 앞으로 소련 정치전개의 중요한 계기가 될 이번 선거는 소련 역사상최초로 복수후보 방식으로 치러지는 선거일뿐 아니라 후보들간 전례 없는 열띤 경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선거에 입후보한 인물들 가운데 특히 흥미를 끄는 인물은 전 모스크바시당 제1서기겸 당 중앙위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있다가 실각한 「보리스·옐친」과 반체제 물리학자 「안드레이·사하로프」박사다.
이중에서 「옐친」은 소련 정계의 이단아로 취급되는 급진적인 개혁론자로 특히 소련지도층에 대한 그의 공격과 독설은 유명하다.
모스크바 민족구에서 출마한 그는 벌써부터 지도층을 위한 각종 특권폐지, 중공업투자 4O% 삭감 및 경공업 생산증대 등 대담한 주장을 펴는 한편 정부·당의 고위관료들의 부패를 신랄히 비난, 일반 대중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고있다.
급진 개혁론자 「옐친」의 인기가 급등하자 보수진영에선 그의 의회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지난 87년 「옐친」의 실각을 몰고 왔던 문제의 당 중앙위 연설내용을 공개, 그의 「정치적 오류」를 폭로하는 한편, 최근 「옐친」이 행하고 있는 일련의 비난행동의 위법여부를 정식조사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옐친」자신은 물론, 그 지지자들은 보수파가 「옐친」을 낙선시키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있다고 비난, 19일 모스크바시내에선 1만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항의집회가 열렸다.
일부 전문가들은「옐친」의 과격한 개혁노선은「고르바초프」의 묵인(?)하에 이뤄지고 있으리라는 분석을 한다. 즉 당내 보수파들과 힘겨운 싸움을 하면서 개혁을 추진하는 「고르바초프」로서는 「옐친」과 같은 저돌적인 개혁주의자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이를 뒷받침하는 논거로 85년 12월 「고르바초프」가 자신과 서기장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모스크바시당 제1서기 「빅토르·글리신」을 해임, 모스크바경력이라곤 전무한 스베들로프스크주당 제1서기로 있던 「옐친」을 전격 기용하고 이어 정치국 후보위원까지 승진시켰던 사실을 들 수 있다.
「옐친」은 87년 12월 그가 당 중앙위에서 행한 당내 보수파에 대한 과격발언이 문제가 돼 실각한 후로도 각료급인 국가건설위원회 제1부 위원장직을 계속 유지해오고 있으며 이번 선거를 통해 소련정치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정치적 컴백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하로프」의 경우도 아주 극적이다. 86년말 7년간의 시베리아유배에서 물러난 「사하로프」는 「고르바초프」의 개혁노선에 대해 「비만적 지지」의 입장에 섰다.
지난해말 소련 과학아카데미는 「사하로프」의 복권을 허락하는 등 유화적 제스처를 보였다. 그러나 정작 과학아카데미에 할당된 인민대의원회 의석20명의 추천에 「사하로프」를 포함시키지 않아 파문을 일으켰다. 아카데미내 보수파들의 반격이었다.
이에 분노한 「사하로프」지지자들은 「사하로프」를 사회단체 추천 아닌 모스크바시 지역구후보로 내기 위한 구체적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사하로프」는 과학아카데미 추천후보가 아니면 인민대의원회의에 결코 나가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이에 공감한 과학아카데미회원들은 22일 열린 총회에서 아카데미 당국이 추천한 23명 후보 중 15명의 승인을 거부하고 「사하로프」, 우주과학자 「자그데프」, 경제학자 「스멜레프」등 이미 탈락했던 인사들을 후보로 추천, 승인해버려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아카데미당국은 아직 최종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으나 「사하로프」의 의회진출은 거의 확정적이라 할 수 있다.
소련사회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위해 필요한 자율·경쟁·창의성 확대를 위한 소련 정치·사회의 민주화과정에서 개혁세력의 목소리는 앞으로 더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정우량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