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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없는 TV」시대 개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유럽경제공동체(EEC) 12개 회원국이 지난 14일 국가간「국경 없는 TV」의 개국에 합의함으로써 유럽방송업계는 방송위성을 이용한 본격적인「TV전쟁」에 돌입했다.
92년까지 무역·자본·노동 등의 장벽을 철폐해 경제통합을 추구하고 있는 유럽은 이번 합의로 유럽통합의 가장 걸림돌로 여겨졌던 각국의 문화적 장벽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다졌다.
그러나「국경 없는 TV」시대의 개막으로 유럽방송계는 거대한 황금시장을 겨냥, 시청자와 광고주 확보를 놓고 한바탕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해져 방송위성을 잇달아 띄울 채비를 하고있다.
위성방송경쟁의 첫 포문을 연 것은 룩셈부르크의 아스트라 호. 아스트라 호의 l6개 채널 중 호주출신 언론기업인「루퍼트·머독」씨의 영국스카이 TV사가 6개 채널을 확보, 주도권을 장악했다.
아스트라 호에 들어간 비용은 2억3천7백만 달러. 올해 안에 영국·프랑스·스웨덴·서독 등이 방송위성을 쏘아 올릴 예정으로 돼있어 몇년 내 2백여 개의 새로운 채널이 생겨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올 가을에 5개 채널을 가진 방송위성을 발사할 영국위성방송사 (BSB)가 영국시장을 놓고 아스트라의 스카이 TV사와 처음으로 맞닥뜨리게 되어있어 양사는 벌써부터 신경전을 펴고있다.
BSB사의 중역들은『승자는 오직 하나일 것』이라고 장담하는가 하면 아스트라관리들은 올해 말까지 영국에서 80만가구 이상의 시청자를 확보하는데 비해 BSB는 그 절반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양사는 송수신체계를 달리하고 있어 시청자들은 어차피 둘중 하나만을 선택해야하는 입장이다.
시청자 확보문제 이외에도 이들 방송사에는 광고주유치가 또 다른 현안이다.
스카이 TV사가 첫해 2억 달러의 적자예산을 편성하는 등 각 방송사가 출혈을 각오하고 있지만 92년까지 2백1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광고시장에 기대를 잔뜩 걸고있다.
「국경 없는 TV」시대의 개막으로 가장 많은 이득을 볼 나라는 엉뚱하게도 미국이 될 가능성이 많다.
전문가들은 영국의 경우만 해도 위성채널수의 증가에 따라 90년 중반이면 현재 주부 5백 시간의 방영시간이 5천 시간으로 늘 것으로 보고있다.
프로그램 방영시간이 늘어나면 미국 등 유럽 외 국가로부터 프로그램이 쏟아져 들어오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다.
벌써부터 미국의 영화·TV프러덕션들은 유럽 내 독점방영권을 따내려는 유럽방송사들 때문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미 미국의 파라마운트사·워너브러더스사 등 유명 영화사들이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위성TV시대를 앞두고 유럽이 들떠있지만 몇 가지 문제점도 있다. 아직도 국가간 언어·문화의 차이가 커 국가별로 판매전략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광고주들이 구태여 비용을 많이 들여 유럽전역에 걸친 광고를 쉽사리 하겠느냐 하는 것이다.
또 유럽인들이 TV를 점점 멀리하는 현상이 최근 뚜렷해지고 있는 점도 지적된다. 조사에 따르면 한가정의 평균 TV시청 시간은 2시간 정도로 미국의 3분의 1수준에도 못 미친다.
그리고 이번「국경 없는 TV」협정으로 미일 등의 TV제작물 범람에 따른 문화적 식민주의를 우려하는 국가들도 있다.

<이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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