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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쌈 먹고 배탈나면 배달앱 책임? 전자상거래법 개정안 논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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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올해 100조원대로 전망되는 온라인 상거래 시장에서 ‘소비자 피해 구제’를 강화하는 법률 개정안이 추진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통신판매로 소비자가 본 피해 #중개업체가 먼저 배상하는 취지 #업체들 “일자리 뺏고 창업 위축”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오픈마켓이나 배달앱 같은 ‘통신판매중개’ 기업을 통해 서비스를 이용한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을 때 상품 공급자가 아닌 중개업자가 먼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김모씨가 A배달앱을 통해 갑 음식점에서 주문한 생굴보쌈을 먹고 식중독에 걸렸다면 A배달앱이 먼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상품을 판매한 갑 음식업주의 책임이었다.

전 의원 측은 “현재 중개업자는 중개자임을 고지하기만 하면 면책되는 구조”라며 “이들에게 ‘전자상거래 사업자’라는 새로운 지위를 주고, 책임과 의무를 부여해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규제 대상엔 오픈마켓·소셜커머스·배달앱 등 최근 활발하게 영업 중인 온라인 기업들이 대거 포함된다. G마켓·11번가·쿠팡·위메프·배달의민족·요기요·여기어때·카카오택시 등 수백 개에 이른다.

한국온라인쇼핑협회는 올해 온라인 상거래 규모가 105조631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5년 53조9340억원에서 3년 새 두 배로 커졌다. 소비자 피해 접수도 같은 기간 6701건에서 약 1만 건으로 늘었다(한국소비자원). 개정안은 “상황이 이러니 ‘장터’를 제공한 사업자가 일단 문제를 해결하고, 나중에 시시비비를 가려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개정안이 법리 원칙에 어긋난 것은 물론 ‘옥상옥 규제’라고 반박한다. 수익자 부담 원칙에도 어긋날뿐더러, 소비자를 위한다는 ‘착한 의지’에서 비롯된 법률 개정이 결과적으로 창업을 위축시키고, 일자리마저 빼앗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구태언 법무법인 테크앤로 변호사는 “스마트폰을 통해 보이스피싱 사고가 일어났으니 이동통신사에 책임을 물리는 격”이라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결과 책임만 지우려는 행정 편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구 변호사는 “선진국에는 없는 지나친 규제다. 이렇게 ‘인기 영합성 규제’를 만드는데 누가 기업을 하고 싶겠느냐”고 되물었다.

A배달앱의 한 임원은 “이렇게 되면 중개사업자들은 등록 심사를 엄격하게 하는 방법으로 진입장벽을 강화할 것이고, 결국엔 창업 기업이나 영세 사업자들이 기회를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B오픈마켓 관계자는 “대부분의 사업자는 소비자 불만이나 피해를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소비자를 보호하자는 뜻엔 공감하지만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 의원 측은 “내년 1월쯤 토론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개정안에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재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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