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바둑' 사람 이길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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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체스에서 컴퓨터가 인간 최고수를 이긴 지 벌써 10년이 됐다. 1997년 IBM의 수퍼컴 '딥블루'가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프를 꺾은 것이다. 그렇다면 컴퓨터가 바둑에서도 인간을 꺾을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컴퓨터란 신비의 강자가 또다른 신비인 바둑의 세계를 완전 해부할 수 있을까.

바둑은 체스보다 승만큼 복잡하지만 컴퓨터는 18개월마다 성능이 두 배씩 좋아지고 있으므로 22세기에는 컴퓨터가 인간 최고수를 이긴다는 계산법도 있다. 과학이 결국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인 게임이란 바둑을 정복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론이다.

인터넷 바둑사이트인 사이버오로의 곽민호 부사장은 과거 '정념'이란 컴퓨터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대회에 출전시켰던 경험자. 그 역시 컴퓨터의 승리를 믿는다. 지금은 컴퓨터가 바둑에 고전하고 있지만 체스처럼 국가적 힘이 기울여지면 사태는 변한다는 것이다.

체스는 60년대 냉전 시대에 미국과 러시아가 매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대결했다고 한다. 전국에서 예선전을 치러 최강자끼리 맞대결을 펼쳤다는 것. 말하자면 체스를 통해 최강국 둘이서 과학 대결을 펼친 것이고 이런 엄청난 투자 속에서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게 되었다고 한다.

바둑에도 체스와 같은 국가적 관심과 돈이 몰리고 이창호 같은 고수들이 직접 작업에 참여한다면 결국은 컴퓨터가 이기지 않겠느냐는 것이 곽 부사장의 견해다.

명지대 바둑학과 정수현 교수(프로 9단)는 4대 6 정도로 인간 편에 선다. "과학의 발달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측면이 있으므로 결국 컴퓨터가 이길지 모른다. 컴퓨터는 이미 사활문제 같은 부분전술에선 아주 고급스러운 문제를 척척 풀고 있다.

따라서 바둑 이론이 좀 더 정밀해진다면 컴퓨터도 점점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바둑은 인간의 영역만이 소화해낼 수 있는 매우 특이한 게임이라 컴퓨터가 이기기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한다.

사실 대부분의 프로기사나 바둑팬들은 컴퓨터가 인간을 이길 수 없다고 믿는다.

바둑은 똑같은 두점머리 급소라 해도 어떤 때는 두드려야 하고 어떤 때는 두드려선 안 될 때가 있다. 따라서 컴퓨터에게 기리(棋理)를 가르쳐줘도 허사가 되기 십상이다. 그 구분을 제대로 하려면 인간 최고수들이 입력 작업을 맡아야 하는데 그들이 현실적으로 이 작업을 맡기도 힘들거니와 맡는다 해도 최선의 수에서 의견이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어떤 수는 왜 최선인지 설명할 수는 없어 감(感)이나 기세라는 단어를 동원한다. 이 감이나 기세를 컴퓨터에게 설명할 길이 없다. 따라서 지금의 컴퓨터가 업그레이드되고 작업을 제대로 하는 정도로는 인간을 이길 수 없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조훈현 9단은 "과학은 무한하니까 수백년이 지난다면 컴퓨터가 이길 수도 있다. 더구나 인간은 실수가 있지만 컴퓨터는 실수가 없지 않은가"라고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실수를 범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약점을 감안하더라도 100~200년 안에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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