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수능 교재 '독점 폭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서울 M고 3년생인 박모(18)군은 영어 시간에 EBS 교재로 수업을 받는다. 수능 시험에 대비해서다. 개인적으로 EBS 교재만 열 권이 있다. 곧 2만5000원쯤 들여 수학 교재 네 권을 더 살 계획이다. 2학기가 되면 또 그만큼을 사야 한다. 그는 "다른 걸 사고 싶어도 EBS에서 수능시험이 나온다니까 어쩔 수 없다"며 "사교육비를 잡겠다고 나온 게 EBS 교재인데 그걸 강의하는 학원도 있다"고 전했다. 공기업인 EBS가 수험생에게 교재를 팔아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 수익금을 사교육비를 줄이는 데 쓰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하고도 실제로는 그 중 상당 부분을 직원에게 나눠줬다. 일부 직원은 교재 판매업자에게 1000만원이 넘는 뇌물을 받기도 했다.

감사원은 8일 이 같은 내용의 EBS에 대한 재무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는 지난해 6~7월에 이뤄졌다.

◆ "독점적 지위로 가능했던 반사이익"=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정강정 원장은 올 수능과 관련, "EBS 교재와 강의를 충실하게 들은 학생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를 내겠다"고 말했다.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2004년부터 채택한 정책이다. 이후 EBS 교재는 사실상 '교과서'가 됐고 판매량도 껑충 뛰었다. 감사원 감사 결과 EBS는 교재 가격을 시중 교재와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했다. 원가는 불과 21%였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EBS는 그 덕에 2004년에만 382억원의 출판 이익을 남겼다. 출판 비용은 불과 189억원이었다. EBS는 국회에서 "수능 교재 출판 이익을 인건비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감사 결과 출판 이익 중 수능 인프라 개선을 위해 쓴 돈은 13억7000만원뿐이었다. 그 돈의 세 배나 되는 돈(43억원)을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줬다.

감사원 이창환 사회복지감사국장은 "EBS의 수능교재 판매 이익은 경영 개선이나 경쟁력 강화에 따른 게 아니라 정부 정책에 의한 독점적 지위로 가능했던 반사이익"이라며 "따라서 EBS는 이익을 낮추거나 이를 공익을 위해 써야 한다"고 밝혔다.

◆ "연봉은 다른 공사의 1.5배"=EBS는 '좋은 직장'이었다. 2004년까지 5년간 연평균 인건비 인상률은 16.6%였다. 그 결과 2004년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은 6700만원이었다. 정부 투자기관 평균 연봉(4358만원)의 1.5배 수준이었다. EBS는 또 2004년 공사 창립일이란 이유로 규정에도 없는 특별격려금 9억8000만원을 나눠 주기도 했다.

이뿐이 아니다. EBS는 2005년 퇴직금 누진제를 폐지하면서 임직원에게 손실분을 전액 보전해 주기로 노사 간 합의했다가 감사원에 적발됐다. 보전액은 총 129억원(1인당 2900만원꼴)이었다. 이 중 52억원을 교재 판매 이익으로 충당하려 했다고 한다. 감사원은 "정부 방침과 사회적 상규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63개 공공기관이 2001년까지 퇴직금 누진제를 폐지했으며 11개 기관만 위로금 명목으로 최고 288만원을 지급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노사 간 합의는 백지화됐다.

감사원은 또 ▶프로그램 제작 기획비 3810만원 전액을 술값과 밥값으로 사용하고▶두 명의 EBS 직원이 교재 판매 총판으로부터 각각 1000만원과 500만원을 받은 것도 잡아냈다.

고정애 기자

EBS "관리비 등 감안 땐 판매이익 25% 선"

◆ EBS의 반응=EBS는 이날 세 차례나 보도자료를 냈다. 첫 보도자료에서 EBS는 "감사 결과를 겸허히 수용한다"며 "전반적인 개선 조치를 강도 높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두 차례 보도자료는 반박성이었다. 교재의 원가에 대해선 "그간 가격을 인하해 왔고 앞으로도 학부모와 학생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낮추겠다"며 "그러나 일반 관리비와 유통 수수료까지 감안할 경우 판매 이익은 25% 선이고 다른 교재와 비교해 면당 단가도 65~80%"라고 반박했다.

판매 이익을 직원에게 더 썼다는 감사원 발표에 대해서도 EBS는 "수능 강의 사업으로 인한 추가 수익은 2004년 세전 이익에 귀속됐다"며 "현재도 이 재원을 토대로 대입정보 종합서비스 사업을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수능사업 이전에도 매년 평균 65억원씩 당기 순이익을 내왔으며 2003년에는 17억원을 성과급으로 지급한 바 있다"고 했다.

경찰, 교재비리 21명 내사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8일 EBS 수능교재 총판 선정 과정에서 금품이 오갔다는 감사원 발표와 관련, EBS 직원 5명과 총판 직원 등 외부 관련자 16명을 내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르면 다음주부터 비리 혐의가 포착된 일부 관련자의 신병을 확보해 이달 내로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입건된 사람은 없으나 이 중 일부는 지금까지 내사 결과 혐의가 짙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