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후 접촉으로 「물길」바꿨다-중간 평가 연기… 여야 교섭 전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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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야 정면 대결을 회피한 노태우 대통령의 중평 연기 발표는 최근 며칠간 진행된 여야간의 막후 접촉을 통해 향후 정국 운용에 어떤 가닥을 내밀하게 합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여야 막후 협상의 주축을 이루었던 민정· 평민측은 밀약설을 부인하고 있으나 지난 며칠간 진행된 여야 접촉을 면밀히 추적해 보면 밀약의 윤곽이 나타나고 있어 앞으로의 정국 향방이 주목된다.
○…민정당이 당원 교육을 통해 조기 정면 돌파론을 부각시켜 가는 가운데 중평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다시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 주초 김영삼 민주당 총재가 태백시에서 대중 집회를 열어 그 열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부터 였다는 후문이다.
특히 지난 주말 김민주 총재는 온양에서, 김대중 평민 총재는 부천에서 대중 집회를 대규모로 가진데 이어 금주부터 이와 유사한 본격적인 대규모 집회가 예상되어 여야간 집회를 통한 정면 대결이 확대될 조짐이 농후해지면서 주말을 계기로 정부· 여당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수정됐다는 것이다.
한 고위 소식통은 『야당측에서 청와대 회담때 큰 밀약이 있었는듯 얘기하지만 그보다는 이번3, 4일 돌아가는 장외 정치에 나타난 현상이 흐름을 바꿨다』고 주장.
민정당은 의원-원외 지구당 위원장 모임에서도 조기 정면 돌파론이 대세를 이루어 사실상 중평 실시 방법밖에는 없는 듯한 국면으로 치달았으나 내부적으로는 여야간 비밀 접촉 등을 통해 정국을 완화시켜 보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어 왔다.
정호용 의원 등 당의 강경론자들이 김용갑 전 총무처장관의 사퇴를 계기로 청와대에 정면 돌파를 촉구했으나 청와대 쪽에서 『김대중· 김종필 총재와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으니 여야가 타협되는 방향으로 끌 고가는 것이 좋겠다』는 반응이어서 청와대의 내심은 정면 돌파에 소극적.
박준규 민정당 대표는 지난 주초 민주당의 태백시 집회 후 『이런 식으로 나가다 나라를 혼란에 빠지게 만든다면 여야의 모든 정치 지도자가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다』면서 확산되어 가는 대중 집회에 우려를 표시하면서 이미 조기 정면 돌파론이 당론으로 굳어진 시점이었는데도 『다시 여야 지도자가 만나 허심탄회하게 정국을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협상의 필요성을 강조.
특히 당원 교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미 막대한 자금을 쓰고 있는데도 청와대에서 정치자금에 대한 대책을 세워 주지 않고 있어 당의 일각에서는 『국민투표에 필요한 정치자금을 마련하지도 않는걸 보면 다른 대안이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들도 떠돌았다.
○…20일 노태우 대통령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특별 담화가 있기까지 여야 핵심 당직자간에 고도의 긴박한 막후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막후 접촉은 민정· 평민당을 축으로 공화당이 강력 뒷받침했으나 강·온파로 나뉘어져 강경파의 목소리가 주류였던 민주당은 초기 단계는 물론 마지막 국면까지 「국외자」였던 것으로 관측된다.
여야 총무들은 이같은 막후 접촉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인 밀약에 대해서는 함구해 현 단계에서의 전체 윤곽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최근의 여야 움직임을 보면 어떻게 하든지 여야 정면 대결을 피하는 방안 마련에 골몰했음을 짚어 볼 수 있고, 이같은 기본 인식 아래서 깊숙한 막후 대화가 있었던 듯하다.
지난 노태우-김대중 회담에서 「단순 정책 평가」를 상호 양해, 여야 정면 대결을 모면하는 길을 터놓았으나 민주당의 김영삼 총재가 용수철처럼 퉁겨 나가 강경 고수 입장을 취하자 민정· 평민· 공화당 등을 주축으로 이후의 정국 타개 방안을 고안해 내는데 부산했다.
특히 평민당이 지난 며칠간 보인 언행은 여야 막후 접촉의 몇 가지 징후를 보여줬다 할 수 있다.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지난 10일 청와대 회담 이후 민주당과 일부 재야의 협공에다 민정당에서 「사실상 신임 연계」를 들고 나오는 등 난기류에 휩싸이자 15일엔 『사실상 신임 연계의 경우 불신임 투쟁을 벌이겠으며 정책 평가라 해도 미진할 경우 대안을 제시, 야당의 승리를 위한 홍보 운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당내 일부 재야의 반발과 만일의 경우 불신임 투쟁에 나서기 위한 대비일 뿐 아니라 대여 경고용이었다.
김 총재는 청와대 회동의 합의가 여권에 의해 깨지는 듯한 움직임이 보이자 이같은 강경선회 가능성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김 총재의 발언이 『이것도, 저것도 모두 반대 투쟁한다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비춰지자 대여 협상 창구였던 김원기 총무가 김 총재의 강경선회에 제동을 걸면서 『김 총재의 진의가 그게 아니다』며 기존 방침에 변함이 없음을 누누이 강조했다. 이는 자신의 협상 권한의 여지를 넓히는 것이었다는 후문이다.
김 총재는 l7일 밤 올림피아 호텔에서 1박하며 18일의 부천 대회 연설 원고를 작성할 때 정보 차원에서 연기쪽 결론을 통고 받아 확신을 가졌다는 후문.
이상 수대 변인이 『18일 부천 대회에서 히든카드가 나올 것』이라고 장담한 배경이며 18일 부천 집회에서 터져 나온 히든카드는 『5공청산과 민주화 조치 이후에 하라』는 「중간 평가 1년연 기론」이었다.
김 총재가 첫 대중 집회인 부천 강연에서 노정 권에 대한 비난을 가급적 자제하고 『파국을 묵과하느니 정치 생명을 내놓겠다』며 「정면 대결=파국론」이라는 정치 소신을 집중적으로 거론했던 것도 막후 접촉의 진행을 측면 지원하려는 의도이자 「연기 확신」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18일 대한변협의 『대통령의 신임은 물론 과거 업적을 대상으로 한 국민투표는 위헌』이라는 성명 발표도 여야 접촉의 막판 물줄기를 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 정가의 분석이다.
일요일인 19일 내내 행방불명 상태로 김민정 총무와 두 차례 만나 최종 통고를 받은 김원기 총무는 이 날밤 10시50분쯤 김 총재에게 보고한 후 20일 새벽 2시30분에야 귀가, 막후 접촉까지 부인하진 않았으나 『여권 안에서 일어난 변화이기 때문에 정확한 얘기를 하기는 이르다』며 구체적 언급을 회피했다.
평민측과 마찬가지로 대여 절충에 나섰던 김용채 공화당 총무도 19일 오전· 오후 각각 한차례씩 김민정 총무를 만나 최종 협의를 하고 이 날밤 청구동 김종필 총재 자택으로 가서 연기를 보고했다.
여권은 여야 절충에서 빠진 민주당에 대해선 이날 최형우 총무와의 연락이 제대로 안돼 밤9시쯤 전화로 20일 아침 총무 회담을 통고해 간접적으로 연기 시사를 했고 최 총무는 이를 역시 전화로 김영삼 총재에게 알렸다는 것인데 김동영 부총재에게 통보했다는 설도 나돌고 있다.
이어 20일 새벽엔 발표문 건이 공식 전달되는 4당 총무 회담으로 이어졌다.
이제 문제는 막후 접촉 주류에서 소외된 민주당은 야권내 강경세력과 일부 재야 운동권 학생의 대응이 관심이나 중간 평가 정국이라는 대하는 한 굽이 크게 물길을 틀어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정계 소식통은 여야 절충 과정에서 절충된 것은 노-김대중 총재 회담에서 합의된 밀약 즉 △야권이 사실상 중평을 않기로 하는데 양해하는 대신 △전· 최씨 국회 출석· 증언(서면 질의서를 보내 그 답변을 국회에서 전· 최씨가 낭독하는 형식) △5공비 리와 광주 사태 관련자의 처리로 정호용· 이원조 의원의 공직 사퇴로 매듭 △광역 자치 단체장 직선을 연기하되 광주 시장 및 충북 도지사 등 2, 3군데를 연내 시범 실시한다는 등을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 평민· 공화당측은 이같은 밀약과 관련, 강경 노선의 민주당 체면을 위해 앞으로 여야 개별 연쇄 총무 회담을 해서 그것을 토대로 4당 총무 회담을 열고 그후에 4당 여야 영수 회담을 열어 이 자리에서「개봉」한다는 순서를 밟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도원· 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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