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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사고에 해군 사망···믿었던 선배는 "후배가 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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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턴하려던 흰색 차량이 마주오는 택시와 충돌하기 직전 장면을 포착한 CCTV 캡쳐. [서초경찰서 제공]

유턴하려던 흰색 차량이 마주오는 택시와 충돌하기 직전 장면을 포착한 CCTV 캡쳐. [서초경찰서 제공]

“살아있더라면 오늘이 아들 전역 예정일이네요. 사고 났을 때도 태권도로 메달 따서 포상휴가 나온 거였는데…”

26일 서울 서초경찰서의 음주 교통사고 수사결과 브리핑에 참석한 임모(46·여)씨는 아들 생각에 결국 눈물을 흘렸다. 임씨의 아들 이모(24)씨는 지난 9월 25일 해군 복무 중 전역을 앞두고 마지막 휴가를 나와 음주 교통사고로 숨졌다. 이씨를 사망하게 한 피의자는 고등학교 때부터 이씨가 믿고 따르던, 태권도를 하며 알게 된 선배 조모(25)씨 였다.

4차까지 술 마시고 30km 음주운전…결국 중앙선 넘어 택시와 충돌

두 사람은 9월 24일, 안산시 중심가에서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술을 마신 뒤, 조씨가 운전하는 조씨의 어머니의 차량을 타고 강남 인근으로 가던 중이었다. 4차까지 이어진 술자리에 두 사람 다 만취 상태였다.

약 30km의 거리를 이동한 후 강남역 인근에서 유턴하려던 조씨의 차량은 반대편에서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달려오던 택시와 부딪쳐 크게 2차례 회전하며 굴렀다.

두 사람 모두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고, 조수석에 앉아있던 이씨는 충격으로 열린 차문을 통해 튕겨 날아가 머리를 크게 다쳤다. 조씨도 조수석 쪽으로 밀려나면서 차 밖으로 나왔지만, 충돌 초기 에어백이 터지면서 얼굴에 찰과상 외에는 크게 다친 곳이 없었다.

지난 9월 24일 강남역 인근에서 발생한 음주 교통사고 차량. [서초경찰서 제공]

지난 9월 24일 강남역 인근에서 발생한 음주 교통사고 차량. [서초경찰서 제공]

사고 직후 현장 방치…"후배가 운전했다" 거짓말도 

조씨는 사고 직후 2m 가량 떨어진 길 건너편에서 사고 현장을 쳐다보다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가까이 가서 후배의 상태를 확인하거나, 119에 신고를 하지도 않았다.

경찰은 “조씨가 음주운전이 발각될까 걱정도 되고, 후배가 위중한 모습에 두려워서 그대로 떠났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두개골 골절 등 머리를 다친 상태에서 10분 정도 방치됐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22시간 뒤 숨졌다.

조씨는 초기 조사에서 “사망한 이씨가 운전했다”고 진술했지만, 이씨는 면허가 없었다. 경찰은 주변 폐쇄회로(cc) tv와 에어백에 묻은 피‧침 등 증거를 들이댔고, 사고 한 달 뒤인 3차 조사에서야 그는 자신이 운전한 사실을 시인했다.

'만취 운전' 입증하려 두 달간 안산 시내 뒤져

경찰은 수사 초기 조씨의 진술에 따라 사망한 이씨가 운전한 것으로 보고, 이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했다. 사고 2시간이 지난 오전 7시,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27%였다. 조씨는 25일 오후 3시 첫 조사를 받았고, 당시 혈중 알코올농도는 0.000%였다.

그러나 조씨의 진술과 다른 정황이 계속 나오자, 경찰은 조씨의 음주 및 운전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그들이 다녔던 술집을 일일이 다 찾아다녔다. 결국 이들이 1인당 ‘소주 900ml, 생맥주 300cc'씩 마신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역추산한 조씨의 사고 당시 혈중 알코올농도는 0.109%로, 면허 취소 수준이었다. 이번 사건을 맡은 김동연 팀장은 “만취 운전임을 밝히려고 안산을 7-8번 넘게 가고, 가게를 10군데 넘게 뒤지느라 수사 기간이 오래 걸린 것”이라고 전했다.

서초서 교통사고 피해자 부모 인터뷰 장면. 김정연 기자

서초서 교통사고 피해자 부모 인터뷰 장면. 김정연 기자

경찰은 조씨를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및 사고미조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차량 혐의로 지난 19일 구속, 23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씨의 어머니는 "(조씨는) 우리 아이가 정말 믿고 따르던 선배였고, 해군을 간 것도 그 선배 따라서 간 거였다"며 "그런데 그 가해자는 증거를 들이댄 것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강력하게 처벌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초서 교통사고 피해자 故이모씨 사진. [사진 이 씨 유족 제공]

서초서 교통사고 피해자 故이모씨 사진. [사진 이 씨 유족 제공]

태권도가 특기인 이씨는 생전에 모델을 꿈꿨다고 했다. 이씨의 어머니는 "병원에 있는 아이에게 일어나라고, 너는 운동선수니까 이런 것쯤 다 버틸 수 있다고, 더 힘든 것도 다 견뎌냈는데 이걸 왜 못견디냐고 했는데 결국 못 일어났다"며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저녁때면 엄마 뭐해요? 밥 먹었어요? 할 것 같다"고 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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