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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KT 통신망 화재, 정부 책임 가볍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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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주말 통신대란을 부른 서울 KT 아현지사 화재의 여진은 어제까지 이어졌다. 이화여대 중앙도서관은 어제 오전에도 인터넷 연결이 안 됐고 사물함 시스템도 먹통이 되는 바람에 ‘디지털 이재민’들은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이번 사태는 기본적으로 KT의 관리 부실이 문제였지만 국가 기간시설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미비했다는 점에서 정부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현재 전기·통신·상수도·가스 등 생활 관련 중요 공급 시설을 모아놓은 지하 공동구는 국가에서 관리하지만 개별 통신선로는 해당 통신사가 관리한다. 정부는 전국망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에 따라 통신선로를 A, B, C, D의 4개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A~C 등급은 통신망이 손상될 때를 대비해 백업 시스템을 갖추도록 이원화돼 있지만 D등급은 이런 의무가 없다. 이번에 문제가 된 KT 아현지사는 D등급인데도 엄청난 통신대란이 빚어졌다는 점에서 등급 산정 기준이 현실에 맞는지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KT의 전국 통신망 중 아현지사와 같은 D등급이 27곳에 달한다. D등급 거점도 전수조사해 백업시스템 의무화 등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하 공동구뿐만 아니라 개별 통신망 거점도 화재나 테러에 취약하다는 점이 이번에 드러났다. 정부와 통신사는 지진 등 재해 때 광역기지국을 가동하는 일본 이동통신사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기지국 하나가 재해로 먹통이 돼도 인근 다른 광역기지국이 커버해 통신두절 사태를 막는 시스템이다. 선박형 기지국도 최근 지진 때 활용됐다.

나아가 화재가 발생해도 소방관 진입이 어려울 정도로 크기가 작은 지하 통신구의 소방시설 규제를 지금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 자동 화재탐지 설비와 자동 진화 시스템이 있었다면 이번 화재도 초기에 진압할 수 있었다. 통신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고려해 통신시설의 안전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