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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네트워크 중독자의 통신대란 대처기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전새벽의 시집 읽기(22)

첨단(尖端)은 ‘날카로운 끝’이란 뜻이다. 첨단 문명의 이기는 말 그대로 온갖 불편을 날카롭게 꿰뚫고 우리에게 편리한 길을 선사한다. 하지만 그 날카로운 끝이 우리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릴 때,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적어도 지난 24일, KT 화재로 인한 통신대란 때는 그랬다. 카드결제나 배달 앱에 의존하는 많은 자영업자는 물론, 무선통신에 기반을 둔 여가에 익숙한 개인들은 모두 네트워크 마비 사태 앞에 한없이 무력했다.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아현국사에서 경찰, 소방 관계자 등이 전날 발생한 화재 원인 등을 조사하기 위한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아현국사에서 경찰, 소방 관계자 등이 전날 발생한 화재 원인 등을 조사하기 위한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독자 여러분과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되는데, 필자의 주말 역시 인터넷과 함께 시작한다. 침대에서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날씨를 확인하겠다는 계획으로 포털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닥치는 대로 뉴스를 읽는다.

어떤 정치인이 막말로 구설에 올랐다는 소식부터 이름 모르는 연예인의 열애 소식까지, 자극적인 제목 따라 손가락이 클릭하는 대로 온갖 정보를 머릿속에 쑤셔 넣는다. 그러다 보면 왠지 피곤하다는 생각이 든다. 피곤할 땐 역시 만화가 제격, 그래서 웹툰 앱을 켜서 또 한참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겨우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간다. 인터넷 라디오를 켜놓고 밥을 안치고, 레시피를 검색해 찌개를 끓인다.

밥을 먹은 뒤에는 유튜브로 최신음악을 들으며 설거지를 한다. 그 후에는 IPTV로 예능 재방송을 보다가, 다시 배가 고파지면 배달 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한다. 저녁때 영화를 한 편 볼까, 싶으면 앱으로 티켓을 예매한 뒤 극장에 가서 콜라와 팝콘을 스마트폰으로 결제한다. 물론, 돌아오는 길에 버스 요금도 같은 방식으로 해결한다.

만일 내가 사는 지역에도 통신 먹통 사태가 일어났다면 나는 어떤 토요일을 보냈을까? 인터넷이 되지 않는 김에 책도 좀 보고,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대신 간만에 요리도 좀 하고, 그렇게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래서 직접 해보기로 했다. 티브이를 끄고 스마트폰을 멀리 던져둔 채 적막한 거실에 오도카니 앉아 보기로 했다.

내가 사는 지역에도 통신 먹통 사태가 일어난다면 어땠을까? 나는 TV를 끄고 스마트폰을 멀리 던져둔 채 적막한 거실에 오도카니 앉아 보기로 했다. [사진 freepik]

내가 사는 지역에도 통신 먹통 사태가 일어난다면 어땠을까? 나는 TV를 끄고 스마트폰을 멀리 던져둔 채 적막한 거실에 오도카니 앉아 보기로 했다. [사진 freepik]

고요함에 귀가 익숙해지자 바깥에서 사람들이 분리수거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외에는 거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구가 이렇게 조용했었나, 라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나는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손에 쥔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결국 소파에서 일어나 거실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광활한 우주에 혼자 놓인 느낌이라, 무언가 소리를 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헛기침도 해보고, 괜히 슬리퍼를 바닥에도 끌어보며 이곳이 진공상태의 우주가 아님을 거듭 확인했다.

저녁 무렵의 적막이 기분 좋은 휴식을 도울 줄만 알았던 나는 그야말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배도 고프지 않은 주제에 냉장고를 열었다가 닫았다가 반복하기를 수차례, 나는 자꾸 리모컨을 찾았다. TV 속 예능인들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듣고 싶어 안달이 났다. 결국 던져두었던 휴대폰을 쥐고 말았다.

혹시 그동안 카톡 채팅방에서 중요한 얘기가 있었으면 어쩌지. 누군가 나를 다급하게 찾는 전화가 왔었으면 어쩌지, 나는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휴대폰을 열었을 때, 거기에는 아무런 알람도 떠 있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적막 속에 놓인 지 채 10분이 지나지 않았었다.

산업계가 무선통신에 의존해 발달해나가는 것을 내가 어쩔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여가생활이 그렇다는 것은 막아낼 수 있다. 10분도 스마트폰 없이는 견디지 못한다면 나는 골수 망내인(網內人. ‘네트워크에 속한 사람’이란 뜻으로 홍콩의 작가 찬호께이가 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이었다. 나는 오프라인 상태가 내게 가져다주는 불안의 원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내가 고독한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철학자 강신주는 스티브 잡스가 한 놀라운 일은 &#34;스마트폰에 터치감을 심어준 거&#34;라고 했다. 만지면 반응하는 기계를 앞에 둔 인간은 쉽게 고독함을 잊어버린다. [뉴스1]

철학자 강신주는 스티브 잡스가 한 놀라운 일은 &#34;스마트폰에 터치감을 심어준 거&#34;라고 했다. 만지면 반응하는 기계를 앞에 둔 인간은 쉽게 고독함을 잊어버린다. [뉴스1]

철학자 강신주는 스티브 잡스가 한 놀라운 일은 “스마트폰에 터치감을 심어준 거”라고 했다. 만지면 반응하는 기계를 앞에 둔 인간은 쉽게 고독함을 잊어버린다. 하지만 그것이 근원적인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지나친 살균처리로 영양소마저 파괴된 편의점 삼각김밥이 주는 포만감이 오래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르면 반응하는 6인치짜리 기계가 주는 위로는 지극히 한시적이다.

고독의 가장 좋은 해결방법은 타인과 무엇인가를 섞는 것이다. 가장 좋기로는 체온을 섞는 것이고, 그게 안 되면 말이라도 섞어야 한다. 무선통신 기반의 여러 여가활동은 간신히 그 흉내를 낸다. 이용자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음으로써, 이용자가 적막함을 느끼지 못하게 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 관계는 어디까지나 일방적이다.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에서 이용자는 자꾸만 두 발로 서지 못하고 표류한다. 따라 하지도 않을 ‘클립을 활용한 25가지 생활 노하우’라는 영상을 나는 대체 왜 보고 있나. 유튜브가 제시한 대로 이리저리 클릭하고 다니다가 떠밀려온 것일 게다.

건강한 교류활동이 결핍되면 몸은 계속 신호를 보낸다. 어딘가 허하다는 느낌이 바로 그것이다. 허기가 사람을 향해 있는데, 그 신호를 읽지 못해 자꾸만 엉뚱한 것으로 허기를 해결하려고 한다. 무의미한 유튜브 신청이나 폭음이 그 흔한 예가 아닐까.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는 우주 공간보다 마음속 빈 공간이 두렵다고 했다. 별과 별 사이의 빈 공간에는 인간이 살지 않지만, 마음속 황량한 공간에는 사람이 살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마음속 빈 공간이 두렵다고 했다. 마음속 황량한 공간에는 사람이 살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마음속 빈 공간이 두렵다고 했다. 마음속 황량한 공간에는 사람이 살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지나가며 바라보는 들 위로
눈이 내린다. 밤이 내린다. 빠르게 정말 빠르게.
몇 포기의 잡초와 그루터기만을 남기고
땅은 부드러운 눈으로 거의 다 덮였다.

숲은 마치 주인인 양 눈 가운데 버티고 서 있다.
짐승들은 모두 제 굴에 들어 숨을 죽인다.
내 마음 너무 허허로워 헤아릴 수 없다.
외로움은 어느 샌가 나를 그 안에 포함시킨다.

지금도 외롭긴 하지만 이 외로움이
덜어지기 전에 그것은 더욱 짙어지리라.
아무런 표정 없이, 표현한 아무것도 없이,
밤의 이 눈은 백지처럼 더욱 하얘지리라.

별 사이의 빈 공간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곳엔 인간이 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마음 속의 황량한 공간은 두렵다.
그 안에선 가까이 인간이 살고 있는 까닭이다.
-로버트 프로스트, 『황량한 공간(Desert Places)』

마음 속의 황량한 공간, 그곳을 필자는 무선통신기술로 채우려고 했다. 하지만 불이 나면 그것조차 할 수 없게 된다는 걸 이번 사건을 통해 배웠다. 기사에서 보자 하니 통신사가 ‘간접 피해’까지는 보상할 수 없다고 해서, 나는 알아서 화재보험을 들기로 했다.

이 보험가입 절차의 첫 번째는 오프라인 상태로 지내보는 것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영상과 소리에서 눈과 귀를 떼고 적막 속에 스스로를 놓아보는 일, 사실은 사람이 그립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전새벽 회사원·작가 jeonjunh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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