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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 킬러' 극단 대표에 여고생 연기꿈 짓밟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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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 E씨(31·사진 왼쪽)가 지난 2월 26일 전북경찰청 기자실에서 "2010년 1월 극단 '명태' 대표 최경성(49)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연극배우 E씨(31·사진 왼쪽)가 지난 2월 26일 전북경찰청 기자실에서 "2010년 1월 극단 '명태' 대표 최경성(49)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20대 여배우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유명 극단 대표가 본인이 연기를 가르치던 여고생까지 마수(魔手)를 뻗친 사실이 재판 결과 드러났다.

전북 첫 미투 가해자 최경성 '명태' 설립자 #여성 4명 성추행 혐의 징역 1년 6개월 #법원 "'고의 없었다' 부인해 실형 불가피" #최씨, 외려 "남자관계 복잡" "망상" 매도 #여배우들 "동료들에게 알렸지만 외면"

전북 지역 첫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 가해자로 지목된 최경성(49) 전 극단 '명태' 대표는 지난 22일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법정 구속됐다. 전주지법 형사2부(부장 박정대)는 이날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상습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최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120시간 이수 및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10년간 취업 제한도 명령했다. 최씨는 2013년 11월부터 2016년 4월까지 극단 단원 등 여성 4명을 모두 12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다시세운광장에서 열린 '#미투, 세상을 부수는 말들' 퍼포먼스에서 참가자들이 침묵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다시세운광장에서 열린 '#미투, 세상을 부수는 말들' 퍼포먼스에서 참가자들이 침묵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에 따르면 최씨는 2013년 11월 본인이 관장을 맡은 전주시 모 문화의집의 청소년 뮤지컬 수업을 받던 A양(당시 만 15세)에게 "회의에 같이 가자"며 본인 승용차에 태운 뒤 A양의 손을 주무르고 허벅지를 만진 혐의다. 2014년 6월에는 합숙용 여성 텐트 안에 혼자 누워 있던 A양의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누운 뒤 가슴에 얼굴을 댔다.

최씨는 2015년 2월 문화의집 직원 B씨(당시 만 22세)도 차 안에서 성추행했다. 같은 해 9월 2일에는 극단 직원 C씨(당시 만 25세)에게 "(너에게) 호감이 있다.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좋다. 지금 너무 떨린다. 느껴봐"라며 C씨 손을 잡아끌어 자기 가슴에 가져다 대는 등 5차례 추행했다. 모두 연극 포스터 제작이나 공연 업무 등으로 단둘이 이동하던 차 안에서 벌어졌다. 최씨는 C씨의 거부에도 "문화의 집에서 250만원, 극단에서 150만원 정도 급여를 받으니 넉넉하게는 못해 주지만 잘해 줄 수 있다"며 성추행을 멈추지 않았다.

최씨는 극단 새내기 단원인 D씨(당시 만 20세)도 노렸다. 2016년 4월~5월 공연장 안팎에서 D씨를 갑자기 끌어안거나 "귀걸이를 채워 달라"며 얼굴을 밀착했다. 한 번은 공연용 차량을 운전하던 최씨가 "나는 결혼을 몇 번 했다. 그런데 다 이혼했지만 몇 번 더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네 생각은 어떠냐"며 조수석에 앉은 D씨의 허벅지를 주무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다시세운광장에서 열린 '#미투, 세상을 부수는 말들' 퍼포먼스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다시세운광장에서 열린 '#미투, 세상을 부수는 말들' 퍼포먼스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의 지휘·감독 아래 있는 나이 어린 피해자들을 상대로 인적 신뢰 관계를 이용해 반복적으로 강제 추행해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그런데도 '고의가 없었다'며 범행을 부인하는 점, 사건 당시 일부 피해자가 곧바로 문제를 제기하자 외려 유별난 사람으로 취급해 2차 피해를 가했던 점 등을 고려했다"며 실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선고 직후 최씨는 "생계 때문에 며칠만이라도 구속을 유예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장인 박정대 부장판사는 "그런 제도는 없다"며 최씨를 구속했다.

이 사건은 지난 2월 26일 연극배우 E씨(31)가 본인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며 "2010년 1월 극단 야유회에서 최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E씨가 성추행을 겪은 8년 전엔 성범죄 친고죄 규정이 폐지되지 않아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런 와중에 D씨가 지난 3월 "2016년 당시 최 대표가 성추행을 일삼았다"고 추가 폭로에 나서면서 경찰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D씨가 성추행을 당한 시점은 2년 전이어서 피해 여성의 고소가 없어도 수사가 가능했다. 형법상 강제추행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두 여성은 "당시 추행 사실을 극단 동료들에게 알렸지만 외면당했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 최씨는 거꾸로 단원들에게 'E씨가 남자관계가 복잡해서 극단에서 내쫓았다'고 거짓말하거나, 단원들 앞에 D씨를 불러내 "나는 너를 여자로 본 적이 없는데 과대망상증에 걸린 애처럼 혼자 왜 그러느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당시 충격으로 연극계를 떠났던 E씨는 1년 반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왔지만, 연기자 꿈을 위해 2016년 3월 대학을 휴학하고 극단에 입단한 D씨는 넉 달 만에 극단을 탈퇴하고 연극판을 떠났다.

1997년 극단 '명태'를 창단해 2015년까지 극단 대표를 지낸 최씨는 2011년부터 전주시 모 문화의집 관장으로 일하다 지난 2월 성추행 사건이 터지자 사임했다. 한국연극협회 전북도지회는 최씨를 영구 제명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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