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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동해 EEZ 기점 어디로…울릉도서 그어야 전체 해역 넓어져 국익 도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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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올 4월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은 해답 없이 봉합됐다. 국제수로기구에 독도 해역 해저의 한국식 지명 등재를 연기한다든가, 독도 부근 수역에 대한 일본 측의 수로 측정계획을 중지한다든가 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일어난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한.일 모두 독도가 자기 나라 영토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여러 방편 중 하나를 챙겨 두자는 것이다.

4월 18일 우리 정부는 유엔해양법협약 제298조에 따라 강제분쟁 해결 절차를 배제하기 위한 선언서를 유엔에 제출했다. 이로써 그동안 일본이 국제분쟁구역임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일련의 활동과 위에 말한 방편의 누적 등 전략적 움직임은 일단 허탈하게 됐다. 그렇다고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 확보를 위한 활동을 중단하리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유엔해양법의 어느 구석을 찾아서라도 유엔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하려 들 것이다. 이에 대비해야 함은 물론이다.

독도의 영유권은 다른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유야 어떻든 상대의 독도 영유권을 인정하면 한.일 어느 나라건 정권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미안하지만 후손들에게 미뤄 놓고 현재의 상태를 조용히 가져가야 한다. 그 대신 12일 시작한다는 배타적 경제수역(EEZ) 협상에 역량을 경주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도 독도가 문제다. 독도를 무엇으로 보느냐, 섬(islands)이냐, 암석(rocks)이냐에 따라 EEZ 협상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필자는 독도를 암석으로 보고 협상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 유엔해양법협약 제121조에 "인간의 거주 또는 독자적인 경제생활을 지속할 수 없는 암석은 배타적 경제수역 또는 대륙붕을 가질 수 없다"고 돼 있다. 문구 해석의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독도는 암석으로 보는 게 보편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울릉도로부터 EEZ를 긋고 협상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독도는 우리 EEZ 안에 들어온다. EEZ 획정은 영유권과는 관계가 없다. 해역의 넓이가 더 오네, 덜 오네 하는 소승적 문제보다 우리는 유엔해양법과 그 정신에 충실하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 줘야 한다.

울릉도를 기점으로 하면 우리 해역이 2만1000㎢ 정도 줄어들지만 일본이 제주도 남쪽에 있는 암석인 조도를 기점으로 EEZ를 그으면 우리 해역이 약 3만6000㎢나 줄어든다. 국제법 정신에 충실한 것이 우리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길이고 넓게 보아 국익에 합당한 길이다.

둘째, 일본이 주변 암석 14개를 기준으로 EEZ를 획정하면 한국 선박이 일본 EEZ의 규제를 받아야 할 바다의 넓이가 엄청나게 늘어난다. 우리가 독도를 기점으로 EEZ를 긋고 협상에 임하면 일본에 일본 열도 주위의 수많은 암석을 기점으로 EEZ를 획정할 구실을 주게 된다. 이때 일본 EEZ의 넓이는 일본 전 국토의 10.6배인 405만㎢가 된다.

일본으로서는 우리가 독도를 기점으로 EEZ를 주장하기를 바랄 것이다. 혹자는 일본이 독도(다케시마)를 기준으로 EEZ를 그었으니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독도의 영유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떠나 암석은 기점이 될 수 없다. 상대방의 위법 사실을 지적하고 시정토록 해야지 우리도 같이 끌려 가서는 안 된다. 중국이 동도(독도보다 작은 암석)를 기준으로 EEZ를 획정하려 할 때 우리 제4광구의 상당부분이 깎여 나갈 것이라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셋째, EEZ를 획정함에 있어 울릉도를 기점으로 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의도였다. 국가의 주장에는 국제법적 합법성과 일관성이 있어야 하거니와 이 원칙에 충실한 게 상대방과 세계에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안병태 한국해양전략연구소장 전 해군참모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