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일 우리 정부는 유엔해양법협약 제298조에 따라 강제분쟁 해결 절차를 배제하기 위한 선언서를 유엔에 제출했다. 이로써 그동안 일본이 국제분쟁구역임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일련의 활동과 위에 말한 방편의 누적 등 전략적 움직임은 일단 허탈하게 됐다. 그렇다고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 확보를 위한 활동을 중단하리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유엔해양법의 어느 구석을 찾아서라도 유엔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하려 들 것이다. 이에 대비해야 함은 물론이다.
독도의 영유권은 다른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유야 어떻든 상대의 독도 영유권을 인정하면 한.일 어느 나라건 정권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미안하지만 후손들에게 미뤄 놓고 현재의 상태를 조용히 가져가야 한다. 그 대신 12일 시작한다는 배타적 경제수역(EEZ) 협상에 역량을 경주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도 독도가 문제다. 독도를 무엇으로 보느냐, 섬(islands)이냐, 암석(rocks)이냐에 따라 EEZ 협상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필자는 독도를 암석으로 보고 협상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 유엔해양법협약 제121조에 "인간의 거주 또는 독자적인 경제생활을 지속할 수 없는 암석은 배타적 경제수역 또는 대륙붕을 가질 수 없다"고 돼 있다. 문구 해석의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독도는 암석으로 보는 게 보편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울릉도로부터 EEZ를 긋고 협상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독도는 우리 EEZ 안에 들어온다. EEZ 획정은 영유권과는 관계가 없다. 해역의 넓이가 더 오네, 덜 오네 하는 소승적 문제보다 우리는 유엔해양법과 그 정신에 충실하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 줘야 한다.
울릉도를 기점으로 하면 우리 해역이 2만1000㎢ 정도 줄어들지만 일본이 제주도 남쪽에 있는 암석인 조도를 기점으로 EEZ를 그으면 우리 해역이 약 3만6000㎢나 줄어든다. 국제법 정신에 충실한 것이 우리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길이고 넓게 보아 국익에 합당한 길이다.
둘째, 일본이 주변 암석 14개를 기준으로 EEZ를 획정하면 한국 선박이 일본 EEZ의 규제를 받아야 할 바다의 넓이가 엄청나게 늘어난다. 우리가 독도를 기점으로 EEZ를 긋고 협상에 임하면 일본에 일본 열도 주위의 수많은 암석을 기점으로 EEZ를 획정할 구실을 주게 된다. 이때 일본 EEZ의 넓이는 일본 전 국토의 10.6배인 405만㎢가 된다.
일본으로서는 우리가 독도를 기점으로 EEZ를 주장하기를 바랄 것이다. 혹자는 일본이 독도(다케시마)를 기준으로 EEZ를 그었으니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독도의 영유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떠나 암석은 기점이 될 수 없다. 상대방의 위법 사실을 지적하고 시정토록 해야지 우리도 같이 끌려 가서는 안 된다. 중국이 동도(독도보다 작은 암석)를 기준으로 EEZ를 획정하려 할 때 우리 제4광구의 상당부분이 깎여 나갈 것이라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셋째, EEZ를 획정함에 있어 울릉도를 기점으로 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의도였다. 국가의 주장에는 국제법적 합법성과 일관성이 있어야 하거니와 이 원칙에 충실한 게 상대방과 세계에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안병태 한국해양전략연구소장 전 해군참모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