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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디자인이 지금도 신제품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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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호 24면

프랑스 조명 디자이너 세르주 무이의 국내 첫 전시

마치 곤충 다리처럼 파이프가 연결된 천장 램프(Ceiling lamp 3 rotating arms)

마치 곤충 다리처럼 파이프가 연결된 천장 램프(Ceiling lamp 3 rotating arms)

마치 곤충의 다리처럼 가늘고 길게 뻗은 파이프, 그 끝에는 여인의 젖가슴처럼 꼭지가 튀어나온 조명 갓이 달려 있다. 단순한 모양내기가 아니라, 전구의 반사광을 높이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갓 역시 각도를 달리하면서 빛의 방향이 자유롭게 조절된다. 불빛은 차분하고 은은하지만 블랙 컬러에 알루미늄 소재까지, 차가운 절제의 미가 두드러진다.

세르주 무이

세르주 무이

이 독특한 ‘빛의 메신저’를 만든 이는 프랑스 조명 작가 세르주 무이(Serge Mouille, 1922~88)다. 20세기 디자인 거장이라 불리는 장 프루베, 샤롤로트 페리앙, 르 코르뷔지에 등과 어깨를 견주는 인물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전위적 디자인 운동을 대표하는 또 한 명의 창작자로, 본질 없는 형식주의·유미주의를 배격하는 반면 합리성과 단순성 거기에 기능성까지 중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몇 번의 그룹전을 통해 소개됐는데, 최근 첫 단독 전시가 마련됐다(11월 15일~2019년 1월 15일, 서울 경희궁길 14). 국내 공식 수입·판매처가 문을 열며 그의 작품들을 한꺼번에 선보이게 된 것. 모던과 미니멀이라는 인테리어의 두 키워드를 녹여 낸 무이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온통 하얀 전시장의 벽·천장·테이블 곳곳에 조명이 달려 있다. 설사 세르주 무이를 몰랐더라도 ‘어디서 봤더라’ 할 만하다. 워낙 남다른 디자인인지라 이미 카피 제품이 여럿 나온 탓이다.

이번 전시에는 어릴 적 파리에서 동물 그림을 즐겨 그리던 감성을 반영한 ‘트라이포드 램프(Tripode Lamp)’부터 무이의 대표 디자인이라 꼽히는 ‘3개 팔이 돌아가는 스탠딩 램프(Standing Lamp 3 Rotating Arms)’,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작업 테이블에 놓았던 집게형 램프 ‘심플 아그라페(Simple Agrafee)’까지 등장했다.

20세기 모던&미니멀 디자인의 표본

전등 갓이 하나 달린 스탠딩 램프(Standing lamp 1 arm)

전등 갓이 하나 달린 스탠딩 램프(Standing lamp 1 arm)

종류로 따지면 모두 14종. 종류가 많지 않아 “겨우?” 할 수도 있지만 사정을 듣고 나면 이해가 간다. 현재 나오는 세르주 무이의 ‘신제품’은 실상 새 디자인이 없다. 그가 선보인 42종만 그대로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유행 따라 금세 구식이 되는 여느 인테리어 제품들과 달리, 몇십 년이 지나서도 그리고 다른 문화에서도 가치를 인정 받는 ‘클래식’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세르주 무이 제품의 수입 사업을 시작한 홍보대행사 프레인 글로벌의 여준영 대표도 이 점을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우연히 파리에서 처음 알게 됐어요. 전문가도 수집가도 아닌데, 참 특이하면서도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디자인이더라고요. 바로 아뜰리에를 찾아가 한국의 파트너가 되겠다고 했죠. 새로운 물건들, 트렌드에 맞춘 제품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이런 조명이라면 절대 후회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생산 역시 소량이다. 무이의 아뜰리에는 그가 작업에서 손을 뗀 뒤 그의 전 부인과 그 남편이 이어받았고, 현재는 두 사람의 아들·손녀가 가업으로 운영하는 상태다. 장인은 모두 16명. 금속·조립·도장 등 대부분의 공정을 손으로 작업하는데,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하나를 직접 만드는 초기 방식 그대로다. 한 개에 최소 6~7주가 걸리는 일이라 1년에 1000~2000개 내외로만 제품이 나온다.

이처럼 변치 않는 디자인에다 제한된 생산량 때문에 빈티지 시장에선 “세르주 무이 조명은 오늘 사는 게 가장 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은세공 자격증 딴 뒤 본격 작업 활동

전시에서는 14개 종류의 세르주 무이 조명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전시에서는 14개 종류의 세르주 무이 조명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세르주 무이를 두고 ‘디자이너’라기보다 ‘장인’에 가깝다고 평하는 건 그의 경력에서 비롯된다. 열 세 살의 어린 나이에 파리의 응용미술학교 (Ecole des Arts Appliques)에 입학한 그는 은세공 마스터 자격증을 딴 뒤 은세공인 겸 조각가 가브리엘 라크로아 (Gabriel LaCroix) 밑에서 기술을 배운다. 그리고 스물 셋에는 모교로 돌아가 교단에 서는 동시에 스튜디오를 열고 자신의 작업활동을 시작한다.

초기에 금속 식기나 장식물을 디자인하던 그가 본격적으로 조명기구를 디자인하기 시작한 건 53년부터다. 벽에 붙이거나 바닥에 세우는 램프, 다리가 여러 개 달려 동적인 이미지를 주는 독특한 조명들은 세간의 화제를 모았고, 56년 마침내 샤를로트 페리앙 (Charlotte Perriand), 이사무 노구치 (Isamu Noguchi), 장 프루베 (Jean Prouve)의 작품들과 함께 파리의 스테프시몽 갤러리 (Steph Simon Gallery)에 전시되면서 도약의 기회를 잡는다. 갤러리는 물론 여러 기관에 조명을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탁상용 트라이포드 램프(Tripod Lamp)

탁상용 트라이포드 램프(Tripod Lamp)

59년 결핵이 재발해 요양소에서 일 년을 보내기도 했던 그는 63년 개인 연구에 몰두하기 위해 조명 제작에서 손을 뗀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가 교수로 지내다 예순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뜬다. 지금까지도 ‘조각 같은 조명’으로 호평받는 무이의 램프들은 따지고 보면 불과 10년 사이에 탄생한 셈. ‘불꽃 같은’이란 수식어가 꼭 들어맞는 삶이었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김경빈 기자, 세르주 무이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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