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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 회동'으로 그룹분리 소문 잠재워…남다른 SK 형제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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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최창원 부회장, 최신원 회장, 최태원 회장, 최재원 수석부회장. [사진 SK]

왼쪽부터 최창원 부회장, 최신원 회장, 최태원 회장, 최재원 수석부회장. [사진 SK]

지난 12일 저녁 서울 잠실 야구장. SK와 두산 경기에 SK 일가 사형제가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58)과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66),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55),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54)이다. 최태원 회장이 야구장을 방문한 건 지난 2011년 이후 7년 만이다. 최신원 회장 제안으로 개인 기부 클럽 아너소사이어티에 나란히 가입한 이들 형제는 야구장에서도 가족애를 과시했다. 시장에선 SK네트웍스 등이 일부 계열사와 함께 SK그룹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란 관측도 있었으나, SK 일가의 '야구장 회동'은 이런 관측을 일축하는 이벤트가 됐다.

야구장에서 보인 가족애는 최태원 회장의 지주사 SK㈜ 주식 증여로도 다시금 확인됐다. 최 회장은 보유 주식 1646만주(23.4%) 중 329만주(4.68%)를 동생과 사촌 형제, 조카들에게 증여했다.

SK 그룹측은 이번 증여 이후 그룹이 쪼개질 가능성을 일축하고 오히려 형제와 친족들이 '한솥밥'을 먹는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형제들이 증여받은 주식 8900억원어치(23일 종가 기준) 중 절반 가까이를 증여세로 내야 하기 때문에 독립에 필요한 계열사 지분 매입 자금 확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태원 회장은 외환위기의 파고가 한창이던 1998년, 서른아홉의 나이로 SK그룹 경영권을 승계받았다. SK그룹은 창업주 고(故) 최종건 회장과 동생 최종현 선대회장의 공동 경영으로 성장한 회사다. 섬유는 최종건, 정유·정보기술(IT) 부문은 최종현 회장이 맡으면서 사세는 비약적으로 확장했다. 73년 창업주가 작고한 뒤로는 동생 최종현 선대회장이 경영을 맡았으나 98년 선대회장마저 폐 질환으로 작고하면서 SK 일가는 경영권 승계 문제를 놓고 가족회의를 하게 된다.

가족회의에는 작고한 고(故) 최윤원 SK케미칼 회장과 함께 12일 잠실 야구장에 모인 형제들이 모두 참석했다. 장자 승계 원칙에 따랐다면 최윤원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는 것이 순서였다. 하지만 사촌 형제들은 최태원 회장을 경영권 승계의 적임자로 추대했다. 채권단의 압박에서 회사를 지켜내야 하는 외환위기 국면에서 미국 유학길에 올라 경제학을 공부해 온 최 회장이 그룹을 이끄는 것이 회사를 위한 옳은 결정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형제들의 만장일치로 1998년 9월 SK㈜ 대표에 취임하게 된다.

최 회장은 이번 지분 증여 결정이 형제들에 대한 '마음의 빚'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사촌들의 결단 이후 우애로 20여년을 버틴 결과, SK그룹이 분열되지 않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최근 가족모임에서 "SK 대표 취임 후 20년 동안 경영진이 하나가 돼 지지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룹 성장은 없었을 것"이라며 "친족에게 지분 증여를 제안한 것도 이런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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