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광주에 때아닌 「미니」 바람 &7라이터·스타킹 선물로 인기|구두 수선공 수입이 교수 월급의 5배|최종명 <연세대·행정학과 3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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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2억의 인구가 숨쉬는 땀, 냉대에서 아열대까지의 다양한 기후, 56개의 소수 민족 이처럼 각양각색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중국 대륙에 휘몰아치는 개방의 열기도 지역에 따라 커다란 차이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어디를 가나 뚜렷이 나타나는 공통점은 젊은이들의 사고와 생활 양식의 변화였다.
중·노년층 대부분이 인민복을 입고 전통 무술인 태극권이나 기공을 즐기는 반면, 젊은이들은 블루진과 가죽점퍼 차림에 디스코를 즐긴다.
소주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한 대학 교수는 『요즘 젊은이들은 힘들게 공부해서 대학에 가느니 차라리 장사를 해서 돈 버는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어 큰일입니다』라며 탄식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대학 교수나 공장 노동자나 보수에 있어서 별로 차이가 없다.
오히려 대졸자가 받는 월급은 노동자보다도 못한 1백원 (한화 약 2만원)도 채 못된다고 한다.
보통 노동자가 1백50원 정도 받는다고 하니 그야말로 노동자의 천국 (?)이라는 느낌이었다.

<암 달러 상을 조심>
개방과 함께 사유 재산이 인정되면서 개인이 장사를 하는 경우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북경에 있는 구두 수선공이 중국 최고 대학인 북경대 교수 월급보다 5배나 더 많은 월 1천원의 수입을 올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의 여러 도시를 다녀 보아도 국가에서 경영하는 상점의 종업원들은 물건을 파는데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한번은 광주에서 시내 버스를 탔는데 버스 안내양이 차비를 받으러 오지도 않았다.
어차피 월급은 국가에서 꼬박 꼬박 나온다고 생각해서였을까.
그러나 개인이 경영하는 경우에는 정반대였다.
관광지에서는 외국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도착하면 버스가 완전히 서기도 전에 많은 잡상인과 암달러상이 벌떼처럼 달라붙었다.
개중에는 손가락으로 모양을 그리며 『라이터, 라이터』를 연신 외쳐대는 꼬마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생필품이 부족한 중국에서는 라이터나 스타킹 등이 선물로 큰 인기였다.
외국인들이 중국 여행에서 주의할 것 중의 하나가 이들 암달러상.
외화가 부족한 중국에서는 70년대 우리 나라에서처럼 암달러상들이 공식 환율보다 더 높은 환율로 중국 인민 화폐를 바꿔주는데, 이들은 버스 창 밖에서 돈을 바꿔주는 체 하다가 갑자기 『경찰이 온다』며 외국인이 내민 달러를 그대로 들고 달아나 버리기 일쑤다.
게다가 이들에게서 바꾼 인민 화폐는 외국인 상점이나 출국시 다시 달러로 교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중국에서는 달러의 유출을 막기 위해 외국인들에게는 중국 은행 발행의 외국환 (FEC)을 따로 사용케 하기 때문이다.

<국제 결혼도 관심>
어느 관광지를 가나 외국인 전용의 숙박 시설이나 열차 대합실 상점들이 따로 있어서 외국인들과 중국인들의 직접 접촉을 막고 있는 듯했다.
외국인 전용 시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에 큰 만족을 느끼는 듯 했으며 서구 자본주의 사회를 동경하는 경향이 큰 것 같았다.
서안의 한 호텔 프런트에서 만난 22세의 아가씨는 『앞으로 희망이 뭐냐』고 묻자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살고 싶어요. 결혼도 그곳 사람들하고 하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 따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중국민항의 한 스튜어디스도 이와 비슷한말을 했다.
그러나 아가씨들은 자존심이 강한 중국인들에게 이 같은 사고 방식은 배척을 받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말할 수는 없다고 일러주었다.
그것은 아마 과거한때 우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대륙에서도 개방화의 물결을 가장 많이 탄 도시는 우리 일행이 마지막으로 방문한 광주였다.
교외 거주 인구까지 모두 7백10만명이 살고 있는 광주는 홍콩과 비행기로 불과 30분 거리 내에 있는 무역항으로 지난 80년 경제 특별구로 지정되었다.
아열대 지방에 위치한 탓인지 사람들의 옷차림은 가벼운 T셔츠 차림이었고 내륙의 다른 도시와는 달리 인민복 차림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젊은 여자들의 대담한 옷차림새로, 무릎의 20㎝이상까지 올라간 미니스커트 차림이 유행이었는데 이들은 미니차림으로 태연히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대낮에도 입맞춤>
도심을 흐르는 주강변에는 밤낮없이 아베크족들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이들은 대낮에도 남의 눈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포옹을 하거나 뜨거운 입맞춤을 하고 있어 우리 일행을 놀라게 했다.
광주의 거리는 다른 어떤 도시보다 지저분하고 복잡했으며 교통 체증이 극심했다.
거리에는 거지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또 대형 책방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는데 특히 영어에 관심이 대단해서 초보적인 영어 회화책을 파는 서점에서는 어린이에서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영어책을 한 묶음씩 사가고 있었다.
앞으로는 『구멍가게를 하더라도 영어를 알아야 된다.』 이곳에서 만난 한 40대 중반 남자의 말이 실감 있게 들렸다.
저녁식사를 위해 우리 일행이 들어갔던 큰 요리 집 앞에서는 방금 결혼식을 마친 웨딩드레스 차림의 신부와 신랑 여러쌍이 피로연에 참석하는 친지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보통 이런 규모의 피로연에 드는 비용이 1만원 (한화 약 2백만원) 정도라고 하니 중국에도 엄청난 빈부차가 있음을 실감케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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