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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둔화 심상치 않다|신성순 <경제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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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경제에 심상치 않은 조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수출 증가율이 급속히 둔화되고 신용장 내도액이 격감하고 있으며 소비자 물가가 지속적인 오름세를 보이는가 하면 통화가 정부의 물리적인 규제를 불러들일 정도로 팽창했다.
수출이나 물가, 통화는 그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잘못되는 경우 우리 경제의 토대가 흔들린다는 점에서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특히 수출 증가세의 급격한 감소는 작은 일이 아니다. 잘 알다시피 우리 경제는 국민총생산 (GNP)의 40%를 수출에 의존하고 있고 아직도 3백억 달러에 가까운 외채를 안고 있다.
수출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 더 이상 성장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외채 상환도 불가능하게 된다. 열병처럼 번지고 있는 복지에 대한 기대도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88년 만해도 28·3%의 증가율을 보였던 수출이 새해 들어 1월에는 10·9%, 2월에는 5·4%로 신장세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2∼3개월 후의 수출 추세를 예고해 주는 신용장 내도액 증가율이 작년 11월의 22·9%에서 12월에는 9%로, 올 1월에는 4·7%, 2월에는 0·3%로 거의 수직에 가까운 하강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에는 1·4분기에 23·6%, 2·4분기에 26·3%, 3·4분기까지만 해도 20·2%의 증가율을 보였었다.
지난 3개월간의 신용장 내도액 증가율이 급감해 왔다는 것은 앞으로 당분간 수출이 상당히 부진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수출 전선에서 직접 뛰는 상사맨들은 그렇지도 않았겠지만 솔직히 말해 그 동안 일반 국민들은 수출은 으레 잘되는 것이란 안도감 비슷한 인식을 갖고 있었던게 사실이 아닌가 싶다.
특히 원화 절상과 노사 분규로 수출 둔화가 예상됐던 88년에 사상 최대의 1백42억 달러 경상수지 흑자란 기록을 접하고는 과거 한푼 어치라도 더 수출하려고 애쓰던 때의 일을 까맣게 잊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2월을 넘기면서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뚜렷이 드러난 셈이다. 물론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의 수출 증가세 둔화나 신용장내도 상황만을 놓고 우리 수출에 근본적 문제가 생긴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지난 1월의 수출 통계 (5백만 달러 혹자)가 나왔을 때만해도 충격을 느끼면서 곧 증가세가 회복되리라는 낙관론이 우세했고 지금도 정부 일각에서는 사태를 심각히 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수출 전망에 대해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것은 수출이란 것이 우리 마음대로 조정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한번 시장을 잃게 되면 그 회복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그마한 조짐에도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왜 수출이 이처럼 급격히 둔화되고 있으며 그 대책은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이냐는 점이다.
수출을 많이 하려면 좋은 물건을 남보다 저렴한 값에 파는 길밖에 없다. 우리 제품이 품질이나 가격에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만큼 최근 수출 신장세가 급격히 둔화되는 것은 우리 상품이 경쟁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우리 기업들은 경쟁력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가격 경쟁력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원화의 환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원화의 달러화에 대한 값어치는 87년에 8·7%가 절상된 데 이어 지난해에는 15·8%의 절상 폭을 기록, 그만큼 우리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잠식했다.
원화 절상 효과가 수출에 파급되는 것은 6개월∼1년 정도 이후이므로 우리 기업들이 지금 한창 그 영향을 받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경쟁 상대국인 일본의 엔화나 대만의 신대폐가 거의 제자리걸음을 한데 비해 우리 원화 절상 폭이 높았던 만큼 그 타격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잇단 노사 분규와 임금의 급격한 상승이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제조업의 임금 상승률은 87년에 l5%선, 작년에는 20%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 나라의 노동 생산성 증가율이 10% 내외로 일본이나 대만에 비해서도 크게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노동 생산성의 2배에 달하는 임금을 지불하게 된다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게 당연하다.
정부가 흑자 관리 차원에서 그 동안 수출 산업에 대한 지원을 거의 중단한 것도 기업들에겐 적지 않은 타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 고약한 것은 이처럼 불리한 여건이 동시에 한꺼번에 밀어닥쳤다는 점이다.
마치 여럿이 달려들어 수출 산업의 목을 죄는 격이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수출 둔화 추세를 심각하게 보고 수출을 다시 늘리려면 이처럼 수출 산업에 가해지고 있는 압박과 부담을 덜어주어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길 밖에 없다.
그러자면 원화 절상 속도를 최대한 억제하고 기업의 임금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긴요하다.
그러나 어느 것이고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임금 문제는 근로자들의 복지 문제와 직결되는 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 문제는 수출 증대가 바로 근로자 복지 해결의 최대의 보장이라는 점에 대해 근로자들과의 사이에 컨센서스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원화 절상 문제도 외국과의 통상 마찰과 연계돼 있어 우리 마음대로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늦기 전에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노력이 중요하다.
정부도 이제까지 안이하게 생각했던 수출 지원 정책 문제를 심도 있게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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