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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트럼프 면전서 직언 “오래된 악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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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서 참석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오른쪽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서 참석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오른쪽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오늘날 오래된 악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정면에 두고 국가주의(자국 우선주의)의 위험을 경고하는 직언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1차 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통해 "서로에 대한 공포심을 조장하지 말고 희망을 건설하자"며 뼈있는 연설을 했다.

파리 개선문과 샹젤리제 거리 일대에서 진행된 이 날 기념식에는 1차대전 당시 승전국이었던 프랑스, 미국, 러시아와 패전국인 독일과 터키(옛 오스만투르크) 등 66개국 정상들이 참석했다. 1차 세계대전의 종전 선언이 있었던 자리에서 이들은 전쟁의 의미를 되새기고 세계 평화를 염원했다.

이날 대표로 세계지도자들 앞에 나선 마크롱 대통령은 "100년 전 전 세계는 프랑스 땅에서 싸웠다. 이 전쟁으로 1000만 명이 죽고 600만 명이 다치고 각각 300만 명이 남편을 잃거나 고아가 됐다"며 기념사를 시작했다. 그는 "100년 전 오늘 프랑스 전역에 종전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종전은 평화가 아니었다"면서 "조상들은 평화를 세우려 했지만 실패했고 20년 후 새로운 전쟁(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평화는 깨지기 쉽고, 그것을 지키는 게 우리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역사는 때로 조상들이 피로 맺은 평화의 유산을 뒤엎고 비극적인 패턴을 반복하려고 한다"면서 "오늘날 오래된 악령이 혼돈과 죽음의 씨앗을 뿌리려고 되살아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국가주의(자국 제일주의)는 애국심에 정확히 반대된다. 국가주의는 애국심을 배반하며 생겨난다"며 "'다른 사람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우리의 이익이 제일 먼저'라고 말하는 것은, 한 국가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것, 그 나라를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 것, 그래서 가장 소중한 것인 그 나라의 도덕적 가치를 깡그리 지워버리는 짓"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자신을 '국제주의자'가 아닌 '국가 우선주의자'라고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경고의 메시지로 해석된다.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과 동맹국들 간의 갈등은 1차 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 전에도 곳곳에서 포착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기념식 참석을 위해 프랑스로 떠나기 직전 트위터를 통해 "마크롱 대통령의 (유럽 독자군 창설) 발언은 아주 모욕적(very insulting)"이라며 "유럽은 먼저 미국이 엄청나게 많이 보조해주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분담금부터 공평하게 내야 한다"고 불쾌감을 나타낸 바 있다.

마크롱 대통령도 최근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비판했다. 기념식에 앞서 지난 10일 열린 미국과 프랑스의 정상회담 분위기도 냉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이날 보안상의 이유로 개선문 행사장에 트럼프 대통령이 15분 늦게 입장한 것을 두고, 동맹국들과의 만남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늦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다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 뒤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각별히 친근감을 표시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차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 왼쪽부터 멜라니아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브리짓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인 [EPA=연합뉴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차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 왼쪽부터 멜라니아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브리짓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인 [EPA=연합뉴스]

한편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마크롱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친분을 과시했다. 두 정상은 10일 100년 전 1차 세계대전 정전 협정이 체결된 프랑스 콩피에뉴 숲에 설치된 작은 동판 앞에 함께 섰다. 이 자리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은 지난 73년 동안 평화를 유지했는데 이런 전례는 없다. 이는 독일과 프랑스가 평화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고, 메르켈 총리도 "독일은 세계가 더 평화로울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것을 확실하게 밝혀둔다"고 화답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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